[뉴스토마토 이종호기자] 금융당국이 보험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추진했던 보험료 자율화 정책이 2년만에 사실상 중단됐다. 정부가 실손보험료 인하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보험료 문제에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2일 보험업계는 정부의 실손보험료 인하와 보험료 변동폭 제한 정책 발표 과정에서 업계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금융위원회가 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보험료 자율화 정책의 기조를 바꿔 새 정부의 코드 맞추기에 급급해 보험업계의 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실손보험 인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금융위에 얘기했지만 제대로 국정기획위에 전달되지 않은 거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금융당국은 가격규제로 인해 발전이 정체된 보험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보험료 자율화를 추진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보험료 자율화가 되면 보험사들이 차별화된 상품을 출시해 소비자에게 유익한 상품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보험료 자율화 이후 치명적인 질병을 보장하는 CI상품의 지급심사기준이 너무 높다는 지적에 생명보험사들은 CI상품보다 지급 조건을 완화한 SI보험을 출시했으며 손해보험사는 대중교통 특약 등 다양한 상품을 출시했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 보험과 실손보험료가 올라 가격 자율화로 보험료만 올랐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는 흔들리지 않고 가격 자율화 기조를 계속 유지했다. 시장에서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시장의 혼란을 주지 않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후 금융위가 입장을 바꿨다.
국정기획위는 실손보험 인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와 금융위, 금융감독원 등과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는 보험사들이 실손보험료 인하 여력이 있다고 국정기획위에 보고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실손보험의 보럼료 조정폭을 보험료 자율화 전인 25%로 돌아가는 것은 맞다"며 "실손보험이 국민 생활과 민접한 관계가 있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해명했다.
보험업계는 가격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정부의 시장 개입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일방적인 정책 결정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실손보험을 시작으로 자동차보험 등 다른 상품까지 보험료 통제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자동차보험과 실손보험은 그동안 금융당국의 가격통제가 있었던 대표적 상품이다. 지난 2015년 보험료 자율화 정책에도 자동차보험과 실손보험은 2018년까지 보험료 변동 폭을 제한했다.
손보사 관계자는 "정부가 언제든지 시장에 개입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시장에 맡겨져야 할 가격을 정부가 통제한다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보험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앞으로 만들어질 협의체에 보험업계를 포함한다고 밝혔지만 보험업계 의견이 반영될 지는 미지수다.
김성주 국정기획위 전문위원 단장은 "우리의 목표는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가 목표"라며 "행정당국이나 개별사의 이해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도규상 금융위 전 금융서비스국장이 지난 2015년 10월16일 보험료 자율화가 포함된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호 기자 sun126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