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깔창 생리대'가 지난해 5월 사회적 문제로 제기됐다. 저소득층 청소년이들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깔창로 버틴다는 소녀들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면서다. 이지앤모어는 이들의 사연이 알려지기 전부터 생리대 구매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저소득층 소녀들에게 생리대 지원사업을 진행해온 소셜벤처다. 회사는 깔창 생리대의 아픔이 전해지기 한 달 전 무렵인 지난해 4월부터 저소득층에게 생리대 지원을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 중이었다. 그러던 중 소외계층의 생리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회사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수면 위로 떠오른 여성들의 월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션을 가지고 있는 이지앤모어의 안지혜 대표를 직접 만나봤다.
'마법의 날'은 매월 여성에게 찾아오는 월경 기간을 일컫는다. 매달 찾아오는 이 기간을 불편을 넘어 고통으로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많은 여성들이 매달 겪는 생리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월경과 관련된 문제는 좀처럼 우리 사회에서 부각되지 않았다. 이지앤모어는 이 같은 현실에서 월경문제를 해결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한 취지로 설립됐다.
합리적인 생리대 가격을 위한 고민에서 시작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사진제공=이지앤모어
평범한 직장인의 고민에서 사업은 시작됐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직장인이었던 안지혜 대표는 생리대를 구매할 때 인터넷을 이용하면 더 싸다는 것을 알지만 매달 마트에서 구매하게 되는 생활패턴에 불만을 느꼈다. 가격적인 면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하는 여성들이 온라인 구매로 저렴한 가격에 본인의 월경주기에 맞춰 생리대를 받아 볼 수 없을까'라는 게 안 대표의 고민이었다.
"자취생들은 홈쇼핑, 마트 등에서 대량 구매할 경우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가 않다. 그렇다보니 더 비싼 가격에 마트나 편의점에서 소량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안 대표는 직장인 여성들에게 월경주기에 맞춰 생리대가 배송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시장조사 도중 취약계층의 현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생리대를 구매조차 하기 어려운 여성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예정된 사업은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꿨다. 그러면서 첫 타깃을 성장기에 있는 저소득계층에 맞추고 이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저소득층에 생리대 지원을 위한 크라우드펀딩이 진행됐다. 여기에 200여명이 참여해 600만원이 모아졌고, 이를 통해 150여명에게 생리대를 지원했다. 성공적이었다. 펀딩이 시작되고 한 달뒤 깔창 생리대 이슈가 국민적 관심을 모으면서 동참하는 이들도 늘었던 것이다.
이후에는 소비자가 홈페이지를 통해 생리대를 구매할 경우 가격에 따라 적립금이 주고, 해당 적립금으로 취약계층에 생리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지난해 6월 150여명이었던 지원대상자는 현재 월 600여명으로 4배가량 늘어난 상태다. 그만큼 이지앤모어를 찾아 생리대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것이며, 생리대 지원에 함께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회사의 수익구조가 궁금했다. 안 대표는 "본사와 직접 계약을 맺고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며 "때문에 온라인을 통해 저렴하게 제품을 팔면서 마진을 남길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같은 가격이라도 이지앤모어로 소비자를 유도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비결은 차별화된 서비스였다. 그는 "지속적으로 생리대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매출이 발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문한 제품 외에 타제품을 샘플로 주면서 체험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월경컵 내년 6월께 출시 예정
안 대표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4월에는 월경컵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다. 월경컵은 실리콘으로 만든 월경용품으로, 체내형 생리대다. 일회용 생리대와 달리 물로 씻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친환경적이고 월경통도 덜하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저소득 계층을 위한 대안 월경용품으로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5~6년전부터 활발하게 보급되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제조하는 곳이 한 곳도 없다. 직구를 통한 구입 만 가능하다. 안 대표가 월경컵 제조에 도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업체들이 쉽게 뛰어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아직 판매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판매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임상실험을 진행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2억원 가량 투자금액이 필요하다. 2억원의 투자가 이뤄지지만 문제는 아직 수요가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반영구적인 제품이기 때문에 구매주기도 길다는 점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안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여성의 또다른 선택권이다. 해외의 경우 면 생리대가 속옷에 들어가는 제품 등 대안 제품이 제작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보도 없고 제품도 없다. 월경컵도 마찬가지다. 4월 월경컵 크라우드펀딩에서 국내 여성들의 관심도 느낄 수 있었다. 2300여명이 참여했고, 5900여만원이 모금돼 현재 국내에서 허가 받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월경컵을 만들기 위한 금형 틀을 제작하는 단계이며, 임상실험을 마치고 내년 6월께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앤모어를 시작으로 많은 업체가 뛰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금까지의 노하우로 차별화를 이루겠다는 각오다.
"뒤따르는 업체들은 동일한 재료로 만들기만 하면 임상실험 없이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당사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임상실험에 성공하면 많은 경쟁사들이 뒤이어 제품을 만들어 팔겠지만 지금까지 여성 소비자들을 통해 얻은 정보로 사용자입장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자신이 있다." 그의 말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회사는 매달 '월경컵 수다회'를 열고 있다. 10명이 모여 18~20개 제품을 두고 의견을 나누는 오프라인 모임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매달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매달 월경컵수다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이지앤모어
모든 여성들의 생리주기별 문제 해결이 최종 미션
그 어떤 누구도 월경으로 인해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회사의 미션이다. 더 나아가 월경, 임신출산, 완경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생리주기별로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게 최종 목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서비스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한 한의원과 연계해 여성 질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당초 취지였던 주기별 맞춤 배송 서비스도 현재 테스트 단계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안 대표는 "지난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은 월경문제 만을 다루고 있지만 멀리는 여성들의 생리주기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