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저유가 악몽 재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보호무역주의로 대변되는 통상 마찰에 이어 유가 공급과잉도 발단은 미 트럼프 정부다. 미국과 중동 산유국간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 셰일자원을 다시 들고 나섰고 유가 폭락을 이끌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증산으로 기조를 바꿨다.
4일 블룸버그 통신이 집계한 OPEC의 6월 산유량은 연래 최대치인 일평균 3255만배럴.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맹주 사우디가 일평균 9만배럴을 증산하며 대미 대응을 주도했다. 2016년 1월 25달러로 국제유가가 바닥을 칠 때까지 증산을 계속하며 미국의 셰일자원을 눌렀던 사우디다. OPEC의 감산 합의는 이미 실효를 잃었다. 유가 반등을 위해서는 단순 감산기간 연장이 아닌 감산규모의 확대가 시급하지만, 역내 갈등 심화와 회원국간 이해관계 상충은 추가감산의 걸림돌이다.
미국도 고집불통이다.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OPEC에 대항하다 한 차례 쓴 맛을 봤지만, 생산원가 절감 등 유정 효율성 제고를 통해 재도전에 나섰다. 23주 연속 증가하던 미국 시추기 수는 지난달 말 2기 줄었으나 전년 동기 대비 여전히 341기 많은 상태(754기)다. 올 들어 미국 원유 수출량은 전년보다 2배 많은 수준을 유지 중이며, 미 천연가스(LNG) 수출량도 5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올 연말 미국의 일평균 원유 생산량이 1100만배럴을 넘어 사우디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포트글로벌증권은 내년 초 국제유가가 2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생산량 확대는 트럼프 정부 에너지 정책의 핵심이다. 경제 부양과 함께 적대적 국가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일자리 창출과 무역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 아시아 국가로의 에너지 수출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미국과 중동간 자원전쟁은 정유·화학, 에너지업체들에겐 긍정적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8월 도착분의 미국산 원유를 추가 주문한 것이 확인됐다. GS칼텍스, 한화토탈, SK E&S 등도 미국산 수입량을 늘리는 추세다. 유가 하락시 일시적으로 재고평가손실을 입지만, 이후 가격하락에 따른 수요 개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반면 겨우 회복국면에 들어선 조선·플랜트·건설 등 수주산업은 걱정이다. 조선업계는 상반기 수주점유율 세계 1위를 탈환했다. 유가가 급락해 해양플랜트 등 자원개발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수주량은 부메랑이 된다. 전방 수요산업 경기가 위축되면 철강·기자재 등 후방산업으로까지 연쇄파장이 불가피해진다. 중동의 오일머니가 부족해지면 중장기적으로 전기전자, 자동차 등 국내 수출산업도 영향권에 돌입한다.
당장 하반기 수출부터 먹구름이다. 지난달까지 수출은 6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제조업 체감경기(BSI)는 5월과 6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국제유가 하락이 업황 악화 요인이다. 최근 유가하락분의 단가 인하로 인해 수출은 이달부터 한풀 꺾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