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중형 조선소가 살아나야 조선산업이 산다"

"대우조선 소유와 지원 주체 모두 금융권…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호황 때 불황 대비 못해 현 위기 직면, 4차 산업혁명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관건"

입력 : 2017-07-13 오후 12:59:06
[뉴스토마토 신상윤기자] 국내 조선업이 올 상반기(1~6월) 283만80CGT를 수주하며 모처럼만에 이름값을 해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84만88CGT)에 비하면 3배 이상 수주량이 늘었다. 그럼에도 일감부족은 여전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조선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는 계속된 적자에 시달렸고, 중소형 조선사들은 고사 직전까지 내몰렸다. 대우조선해양은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 했고, 전세계 조선업을 호령하던 현대중공업은 수주난에 이달부터 군산조선소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협력업체의 연쇄 도산으로 지역경제도 파탄을 맞았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물결도 다가오고 있다. 융복합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 설비와 노동 중심의 조선업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예상조차 어렵다. 이에 산업계와 노동계, 정계, 학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대응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조선해양산업발전 연구모임'을 이끌고 있는 한순흥 카이스트 해양시스템대학원 교수를 통해 조선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했다. 
 
연구모임 결성 배경은.
 
산업혁명은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4차 산업혁명의 태동 기반은 이미 조성됐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으로 전세계 모든 사람이 실시간으로 서로 연결됐고,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증명하듯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사례를 보면 산업혁명 시기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선진국과 후발국이 나뉘었다. 우리나라도 이 변화의 파도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조선산업 관련 학계와 정계, 산업계와 노동계에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 김은 한국ICT융합네트워크 부회장이 제안을 했고, 제가 대표를 맡게 됐다. 모임에는 김종훈 의원(무소속),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장 등 노·사·정·학 분야에서 45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참가자 모두가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조선해양산업의 발전 전략을 연구하고, 일자리 유지와 창출 방안을 고민해보자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모이게 됐다.
 
한순흥 카이스트 교수. 사진/한순흥 교수
 
모임에서 논의되는 주제와 내용은.
 
연구모임은 지난 3월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발족했다. 이날 '4차 산업혁명과 조선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첫 토론회를 하면서 조선산업에 대해 다들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매달 한 차례씩 국회와 울산, 부산 등 조선산업과 관계가 깊은 지역을 돌며 토론회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이달까지 총 5번의 정기 모임을 가졌다. 각 분야에서 참가한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다 보니 의견 충돌이 있을 때도 있고, 한쪽 분야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추후엔 이를 구체화 해 정책적 의제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조선업의 변화는 어떻게 예상하나.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기술의 등장으로 산업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조선산업도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빠르게 없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산업군 중 하나다. 그러나 과거 산업혁명 사례를 볼 때 또 다른 형태의 일자리가 조선산업 내에서 창출될 수 있다. 이 새로운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하고, 잘 적응하느냐가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조선업 내 실업이 크게 증가할 수 있는 만큼 업계나 노동계, 더 나아가 정계나 학계에서도 그에 대한 빠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한순흥 카이스트 교수(가운데)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과 조선해양산업발전 연구모임' 회원들이 토론회를 마치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한순흥 교수
 
조선업 위기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원인은.
 
조선업 위기는 2007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세계 경기 하강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반면 한국은 2014년 유가하락 이전까지 해양플랜트 수주가 뒷받침이 돼 큰 체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듬해 해양플랜트마저 수주가 끊기면서, 선박과 해양플랜트 중심의 국내 조선업이 큰 위기를 겪게 됐다. 인근 국가인 중국과 일본이 자국 수요를 상당 부분 흡수하며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자국 선사들의 주문량이 적은 탓에 더 큰 불황을 맞고 있다. 여기에 해양산업은 호황기와 불황기 사이의 기복이 심하다는 특성을 조선업 종사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고려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졌던 국내 조선업 호황기 때 지금과 같은 불황을 대비하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조선업 위기에 협력사를 비롯해 노동자들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조선소가 어려우면 제일 먼저 체감하는 쪽이 노동자다. 월급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불황을 대비할 여력도 없다. 사내외 협력사와 조선해양 기자재 제작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조선소가 일감이 떨어지면 이들도 연쇄적으로 일감이 사라져 고용이 어려워지고, 더 나아가 지역경제도 몰락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연구모임은 이런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을 놓고 논란이 많았다. 국내 조선산업 구조조정 문제점과 대응책은.
 
대우조선해양은 정부 지원 당시 소유자와 금융지원 주체가 모두 금융권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대우조선해양이 다른 조선소나 산업군에 비해 금융지원이 더 많이 집중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독일의 사례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일본은 1970~1980년대 10여년에 걸쳐 두 번의 큰 조선업 구조조정이 있었다. 일본은 이때 조선업 주무부처인 운수성에 업계와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기구 '해운조선합리와심의회'라는 기구를 설치하고, 해운업과 조선업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대책을 마련했다. 두 차례 구조조정을 통해 일본의 조선업 설비는 50% 가까이 줄었고, 인력은 구조조정 이전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감축됐다. 그 결과 일본은 아직까지 조선산업의 강국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도 외국 사례들을 벤치마킹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을 통해 조선업 강국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세워야 한다.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 회복 방안은.
 
한국의 조선해양산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동시에 비효율적으로 비대해진 조선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15년간 급속도로 팽창만 있었다. 한국의 조선업 구조조정이 진행형이지만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대형 조선소와 중소 조선소를 포함한 큰 범위에서 해운업 그리고 조선 기자재 산업까지도 고려해 균형 잡힌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연구모임은 이달 초에 부산에서 '4차 산업혁명 관점에서 중형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국내 조선업의 정책과 지원이 조선 3사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 많이 거론됐다. 일본은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형조선소를 잘 지켜냈고, 현재 그들은 세계 경쟁력을 갖춘 조선소로 도약해 한국과 경쟁하고 있다. 한국도 중형조선소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중소 조선소에 대한 대책이 부실하다.
 
국내에는 대형 조선소가 모여 만든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와 소형 조선소의 '한국조선공업협동조합'이 있다. 이 두 단체의 중간 허리 역할을 하는 것이 중형 조선소들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중소형조선협회를 통해 중형 조선소들이 목소리를 내고 했는데, 글로벌 위기를 겪으며 지금은 회원사였던 조선소들이 절반 가까이 사라졌다. 최근 금융권의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이 대형 조선소 대비 1%에 그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 같은 현실이 중형 조선소의 체질 약화를 만들었다고 본다. 중형 조선소는 대형 조선소가 수주하지 않는 일감을 가져와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이에 대한 관심과 정책·금융적 지원과 배려가 필요하다. 이렇게 확보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조선소들과 경쟁해야 한다.
 
신상윤 기자 new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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