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정부가 추경안을 넘어 재벌개혁을 내세우면서 조세개혁 의지도 드러냈다. 내각 구성도 마무리 국면이라 국회 입법처리에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부는 이미 국정과제에서 주요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를 예고했다. 일자리 창출, 고용확대, 하도급 계약 개선 등 재계의 자발적 변화 유도에 이어 실질적 제도 압박이 현실화 단계에 진입하는 모양새다. 당장 대기업·부자증세부터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3일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조세감면액 실적을 분석한 결과, 전체 조세감면액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반대로 법인세·대기업 대상 감면액이 감소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연구원에 따르면 해당기간 소득세 감면액이 28.8% 증가하는 동안 법인세 감면액은 24.7% 감소했다. 또 중소기업 감면액이 5.2% 증가한 반면 기업규모별 통계가 세분화된 2013년부터 2015년 사이 상호출자제한기업은 5.9%, 중견기업을 뺀 기타 대기업은 34.3% 줄었다. 정치권에서 증세 논의가 부상하자, 여지가 많지 않다는 방어논리를 꺼낸 것이다. 유환익 한경연 정책본부장은 “조세감면제도는 지난 2012년부터 꾸준히 정비돼 왔기 때문에 이제는 축소·폐지할 것이 많이 남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여당의 증세안 파장이 거세지는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일 소득 2000억원 초과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과세표준을 신설해 최고세율 25%를 적용하고,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인 5억원에 적용하는 세율도 40%에서 42%로 인상하자고 제안했다.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은 “원래 재원대책에 증세가 포함돼 있었지만 방향과 범위를 정하지 못해 이제 확정해야 할 시기인데, 여당이 구체적으로 제시해줬다”며 힘을 실었다.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과세형평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 속엔 대기업 과세 정상화, 대주주 주식양도차익 등 자본이득·초고소득·금융소득 과세 강화, 상속·증여세 신고세액 공제율 축소 및 과세체계 개편 등의 항목이 부각된다. 대기업집단의 편법적 자본 불리기와 3·4세 승계를 목전에 둔 총수일가의 조세회피를 겨냥했다. 다음달 세제개편안에는 기업소득환류세제 내용이 실린다. 기획재정부는 해당 세제를 3년 연장할 계획이다. 특히 현재 80% 수준인 환류 기준율을 90%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존에 기업소득의 80%를 투자·임금·배당에 쓰면 추가 과세를 면했지만 앞으로는 90% 이상을 써야 한다.
재계로서는 다른 경제민주화 입법과제도 산적해 있어 부담이 가중되는 형편이다. 정부는 국정과제로써 입법에 공을 들일 법안들을 지목했다. 특히 그 속엔 상법 개정안 등 민감한 내용이 다수다. ▲뇌물·배임·횡령 등 부패범죄 처벌 기준 강화 ▲다중대표소송제·전자투표제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지주회사 행위제한규제 강화 ▲인적분할 시 자사주 의결권 부활 방지 ▲기존 순환출자 단계적 해소 방안 마련 추진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적용대상 확대 ▲금융보험사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 강화 등이 눈에 띈다.
재계 관계자는 “대내외 경제 악재로 어려운 상황에서 반기업 정서와 규제 등으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경제활성화를 통한 시장친화적 조세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를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인세 인상은 소비자가격 인상, 임금상승 억제 등 부작용이 있고, 해외직접투자 유치에도 부정적”이라며 “기업소득환류세제는 투자나 임금증가 유인 없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내수부진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배구조 규제와 동시에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라는 이중 압박을 받는 처지”라며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규제도 풀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