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블랙리스트 판결'과 '가짜 뉴스'

입력 : 2017-07-31 오전 6:00:00
지난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큰 문제가 됐던 '가짜뉴스'의 폐해가 법조계까지 범람하고 있다. ‘가짜뉴스’는 본질적 특성상 허위사실로 특정인을 '매장'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데, 이것이 사법부의 판단까지 쥐고 흔들 수 있어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의 1심 판결이 있던 27일, 이 재판을 담당한 황병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종일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선두에 올랐다. 이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지만,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 비판 의견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법원이 '아랫사람'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상급자'인 조 전 장관에게만 면죄부를 줬다는 목소리가 컸다. 
 
격양한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조 전 장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황 부장판사가 2015년 분식집에서 2만원과 라면 10개를 훔친 도둑에게는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장발장 판결'의 주인공이라는 소문이 발 빠르게 퍼졌다. 신동욱 공화당 총재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은 개인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 소식을 '사실'로 전했고 여러 언론도 이를 인용 보도했다. 급기야 황 부장판사의 개인 신상까지 공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서울중앙지법은 "황 부장판사가 당시 형사재판을 담당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과 다른 기사로 인해 오해가 발생하거나 오보가 돼 언론매체 신뢰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당부한다"고 해명에 나섰다. 신 총재도 잘못된 정보를 언급한 것에 대해 황 부장판사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은 다시 주울 수 없었다. 졸지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의 당사자가 된 황 부장판사의 인격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아니면 말고'식 가짜뉴스의 문제점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대선 무렵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 취업 논란과 관련해 가짜 녹음파일과 SNS 메시지를 언론에 공개했던 국민의당 관계자들은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국민의당은 철저히 제보자 개인의 문제일 뿐 제보가 가짜인지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며 국민이 법을 바라보는 관점은 점점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맥을 같이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정해야 할 법까지 '가진 자'를 위한다는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황 부장판사의 사례 역시 그렇다. 황 부장판사가 판결하지 않았더라도 라면을 훔친 도둑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어떻게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느냐는 사법부를 향한 근본적인 항의일 것이다.
 
다만 판결이 '잘못됐다', '제대로 됐다'는 문제를 떠나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내 프레임 씌우기에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범죄에 불과하다. 존재하지 않는 거짓에 기초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또 다른 비극만 불러온다는 사실을 이번 일이 제대로 보여줬다.
 
김광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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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