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의당 안팎에서 안철수 전 대표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당내 인사들과 일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안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대선 패배와 제보 조작사건으로 당이 존폐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안 전 대표가 직접 나서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안 전 대표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의 면면으로는 국민의당의 창당정신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성과도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이들의 출마 요구에 침묵하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안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는 상식에 맞지 않는다. 지난 12일 조작사건으로 인한 대국민사과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후보였던 제게 있다”며 “원점에서 저의 정치인생을 돌아보며 자숙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던 안 전 대표였다. 자숙과 성찰의 시간을 갖고 생각해낸 결과물이 당대표 선거 출마라면 지난 대선에서 안 전 대표를 지지했던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주는 일이다.
정치인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잘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선 과정에서 드러났던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변화시키지 못한 채 그대로 재등판한다면, 국민들은 달라진 것 없는 안 전 대표의 모습에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패배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7개월간 머물렀다. 그 뒤로도 1년이 더 지나 아시아·태평양 민주지도자회의를 결성하며 정계복귀 수순에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한 후 개인 의정활동에만 전념하며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그러다 2015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가 되면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이처럼 낙선한 후보가 공백기를 갖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이다. 대선처럼 큰 선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안 전 대표는 지난 5월 대선을 치룬 뒤 고작 2개월여의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낙선한 주요 후보 가운데 2달 만에 정계에 복귀한 인물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유일하다.
정치지도자에게는 언제나 위기가 닥친다. 안 전 대표의 말대로 원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후일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서는 비우는 과정도 필요하다. 안 전 대표에게 좀 더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주용 정경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