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SI업계 월화수목금금금, 바뀔까요?"

입력 : 2017-08-01 오후 12:24:54
11년차 개발자 신모(39)씨는 백일이 갓 지난 아기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늦은 밤 귀가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생활이 수개월째 반복되고 있다. 프로젝트 마감이 임박해지면서 주말도 없다. 여름휴가는 꿈도 못 꾼다. 어쩌다 일을 빨리 마쳐도 칼퇴근은 불가능하다. 그는 "갑인 발주처 직원과 을인 사업 주관사 직원들이 남아 있으면 병의 입장인 나는 먼저 나가기가 눈치 보인다"며 "프로젝트가 끝나면 회사에서 단 며칠이라도 휴가를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융권 시스템통합(SI) 업계에 10년째 몸담고 있는 개발자 조모(35)씨는 올 초 퇴사 후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10년간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덕에 프리랜서로도 일감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안정적인 직장을 나온 이유는 그나마 눈치를 덜 보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프리랜서들은 프로젝트에서 자기 할 일만 하면 출·퇴근과 회식 등에 있어 그나마 눈치를 덜 볼 수 있다"며 "불안하긴 해도 내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과장급인 10년차 정도의 개발자들은 자신의 신입사원 시절과 지금이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발주처는 당초 계획에 없던 기능을 추가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지만 대가는 지불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초반인 분석·설계 단계에도 은근히 야근을 강요해 피로가 누적된다", "공무원들은 자신의 업무 내용을 외주 직원인 우리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 답답하다" 등의 하소연이다. IT 시스템 구축과 유지·보수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다. 모든 업무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모바일 시대에는 중요성이 더 커졌다. 하지만 정작 시스템을 구현하는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하도급 체계가 만연한 SI 업계에서 그 고충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심해진다.
 
예산 배정에 인색한 공공기관과 기업들의 인식도 여전하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바라다보니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업들은 인력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SI업계에서는 사람이 제조시설이다. 비싸고 좋은 기계가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내듯 양질의 인력이 많이 투입되면 프로젝트는 더 원활하게 진행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당초 책정된 예산이 빠듯해 투입 인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2명이 해야 할 일을 1명이 감당하다보니 야근과 주말근무를 피할 수 없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최근 이러한 관행을 바꿔보겠다고 TF(태스크포스)를 꾸렸다. TF 명칭은 '아직도 왜'다. 개발자 출신인 그가 현장에 있을 때와 지금이 별 차이가 없다는 판단이 기초가 됐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3D에 Dreamless(희망없는)까지 더해져 4D 업종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유 장관이 희망이 되어야 한다.
 
산업1부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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