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밖 구형에 삼성 초상집…“삼성공화국은 끝났다"

충격에 공식입장 한 줄 없어…이재용 법정진술, 경영능력 의심의 족쇄 될 수도

입력 : 2017-08-07 오후 6:36:17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심 공판일인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특검이 삼성의 저승사자를 자처했다. 재벌 총수들에게는 이례적인 12년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구형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그룹 대외업무를 총괄하던 장충기 사장 등 이전 수뇌부에게도 10년의 중형이 구형됐다. 삼성 측은 충격에 휩싸였다. 대외적으로는 심증과 추측만 난무할 뿐 결정적 증거가 없다며 무죄 판결을 확신하고 있지만 내부의 짙은 불안감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7일 결심공판에서 중형을 구형받은 이 부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평소 존경받는 기업인이 돼 보자는 다짐을 했지만 뜻을 펴보기도 전에 법정에 서게 돼 만감이 교차한다”며 울먹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을 동원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이 오해만은 꼭 풀어달라"며 전면 부인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구형에 삼성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임원은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아 끝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안팎의 중론”이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초상집 분위기", "특검 구형에 재판부도 압박을 느낄 것 같다" 등의 말도 흘러나왔다. 특히 정유라의 갑작스런 증인 출석, 청와대 문건의 등장과 함께 그간의 진술 거부 등 조직적 움직임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28일 구속기소돼 3월 3차례의 공판준비 절차를 시작으로 총 53차례의 재판을 거쳤다. 이날 결심공판은 대장정을 끝내는 마지막 심리였던 만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현장에서는 방청객들이 전날부터 몰려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삼성 관계자들도 방청권을 얻기 위해 전날 오후부터 밤을 새야 했다. 매 공판마다 법원에 출석했던 삼성 임직원들은 여론전에 힘쓰며 선고를 기다릴 방침이다. 그간 특검이 공판에서 제기한 정황증거 등이 일부 보도되며 이에 대한 해명에 힘써왔다. 여론이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일말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이날 구형도 부정적 여론을 염려해 따로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선고는 이 부회장의 구속만기일 이전인 25일로 잡혔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공여,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 국회 위증 등이다. 특히 경영권 승계 등 그룹 현안 해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고자 최순실씨 측에 총 433억2800만원의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 딸 정유라씨 승마 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출연금이 모두 뇌물액에 포함됐다. 뇌물공여는 법정형이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재산국외도피와 횡령 등이 무겁게 적용되면서 12년 구형을 이끌어냈다.
 
이 부회장 개인은 물론 삼성에 대한 대외 신뢰도와 이미지도 직격탄을 맞게 됐다. 특히 그룹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 부회장의 법정 진술은 향후 그의 경영 역량을 의심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은 2014년부터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경영 공백을 메울 후계자로 대내외에 인식돼 왔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르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제가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았고 챙겨야 할 것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며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져야 할 모든 책임을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앞으로 돌렸다. 혐의에서 벗어나고자 상식에 벗어나는 진술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역으로는 이병철·이건희 회장을 잇는 3세의 자질에 의문을 더하게 된다. 이 부회장 없이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주가도 사상 최고치로 올라서는 등 시장이 공백을 염려하지 않는 것도 삼성으로선 부담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몰아치는 재벌개혁 현안에도 대응이 어려워졌다. 이사회 독립성, 금산분리, 순환출자 해소 등 어느 것 하나 삼성을 비켜가는 게 없다. 헤지펀드 엘리엇 등이 재판 결과를 빌미로 배당 확대나 이사회 참여를 요구할 수도 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맞물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에 우호적인 전략을 펼쳐 삼성전자를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재계도 이번 재판 결과에 긴장하고 있다. 재단 출연 등에 대한 재발 방지책과 책임 있는 임원들의 이사회 선임 반대 등 견제와 감시에 대한 시선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 독립성을 요구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임제 등 상법 개정안 이슈에도 기름을 부을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재판 결과에 따라 재벌집단이 범죄집단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공화국은 끝났다"며 "앞으로 사회와 함께 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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