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대통령님, 떨리지 않으십니까? 저는 지금도 떨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한 청와대 출입기자의 발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17일 취임 100일 청와대 기자회견은 ‘각본 없는’ 소통의 장이었다. 이날 회견의 가장 큰 특징은 사전 시나리오가 없었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청와대와 기자단 간 질문 주제와 순서만 조율했고 구체적인 답변 방식에 대해서는 사전에 정해진 약속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전 정부에서는 사전에 질문할 언론사와 기자가 미리 정해졌고, 대략적인 질문 내용도 청와대가 파악해 답변을 준비할 수 있었다. 과거 대통령 기자회견에 소통이 아닌 ‘쇼(Show)통’이라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다.
오전 11시 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 입장하자 200여명의 내·외신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임종석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들이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무대 중앙에 문 대통령이 자리하고 참모진이 뒤쪽에 배석했다. 기자단은 무대 주위에 ‘반원형’으로 배치돼 대통령을 주시했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지난 100일을 “국가의 역할을 다시 정립하고자 했던 100일”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모든 특권과 반칙,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중단 없이 나아가겠다”면서 “국민 여러분이 국정운영의 가장 큰 힘이다. 국민과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인사를 겸한 5분간의 모두발언이 끝나고 60분간의 뜨거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문은 크게 ▲외교안보 ▲정치 ▲경제 ▲사회 분야로 나뉘었다. 사회를 본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질문을 받겠다”고 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행사 종료시점까지 기자들이 계속 질문을 요청하자 윤 수석은 “더 이상 손을 드셔도 소용이 없다”며 말렸다.
문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했다. 오히려 질문하는 기자들 쪽이 긴장을 한 듯 손을 떨거나 말을 더듬었다. 우선 외교안보 분야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한반도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우리 동의 없이 누구도 한반도에 군사행동을 정할 수 없다”며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에 대해 어떤 옵션을 사용하든 모든 옵션에 대해 한국과 충분히 협의하고 동의를 받겠다 약속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 대해서는 “한미FTA가 없었더라면 미국의 무역 수지 적자는 더 늘어났을 것”이라며 “미국과 당당히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외신기자가 “일본군 위안부 등 강제징용 문제는 1960년대 한일회담으로 다 해결된 것 아닌가”라고 묻자 “위안부 문제는 회담 당시 알지 못했던 문제로, 회담으로 해결됐다는 것은 맞지 않다”며 “강제징용자 문제도 양국간의 합의가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다만 “그런 과거사 문제가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며 “과거사 문제는 과거사 문제대로, 또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한 한·일간의 협력은 그 협력대로 별개로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제분야 질문에서는 “미친 전·월세에 서민과 젊은 사람들이 해방되기 위해서도 부동산 가격의 안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강력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증세 논란에는 “현재 정부가 발표한 여러 가지 복지 정책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증세 발표만으로 충분히 재원 감당이 가능하다”며 선을 그었다.
개헌에 대해서는 “내년 지방선거때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에 변함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적폐청산의 경우 “특정 세력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적폐청산의 목표는 아니다”라며 “사회를 불공정하게, 불평등하게 만들었던 많은 반칙과 특권들을 일소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추진중인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지금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수명이 만료되는 대로 하나씩 문을 닫아나가는 것이라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은 급격하지 않다”며 “적어도 탈원전에 이르기까지 6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동안 대체에너지를 마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자신했다.
행사가 종료되고 문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 배웅했다. 윤영찬 수석은 “문재인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국민 속에서 국민과 함께하며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 국민을 섬기며 나라다운 나라, 원칙이 똑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하면서 행사를 마무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