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친환경 식품의 진실

입력 : 2017-08-22 오전 6:00:00
인류사에서 계란이 주요 먹거리로 등장한 것은 수 천 년 전 아시아에서였다고 한다. 인도의 여러 문헌에 따르면 인류는 기원전 3200년 전 닭을 치기 시작했다. 그와 달리 유럽에서 계란을 먹기 시작한 것은 중세 말에 이르러서다. 그러나 이때는 전통적 미신에 의해 계란이 나쁜 의미를 나타내기도 했다. 한 개의 계란 속에 두 개의 노른자가 들어있으면 매우 불길한 징조(죽음)로 간주했고, 영국 선원들은 나쁜 조짐으로 여겨 바다에서 ‘계란’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을 주저했다. 그리고 로마시대부터 계란껍질은 마녀와 연결되었다.
 
그러나 루이 14세 시대 들어 계란은 첫 번째 전환기를 맞는다. 루이 14세는 삶은 달걀을 무척 좋아해 베르사유 곳간에 수많은 암평아리를 키우도록 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이 달걀을 많이 먹기 시작한 것은 19세기가 되면서였고, 계란의 수요가 늘자 알을 많이 낳는 중국 닭을 수입했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계란은 단백질과 철분이 많이 들어있는 완전식품으로 인정돼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고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가 되었다. 부풀어 오른 계란탕에서부터 계란부침, 계란말이, 김밥, 카스테라 등 이루 나열할 수 없을 만큼 계란이 들어가는 음식이 많다. 통계에 의하면 프랑스인과 한국인 모두 일인당 연평균 220개의 계란을 먹는다고 한다. 거의 매일 한 개씩 먹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살충제에 오염된 네덜란드산 계란이 세계 곳곳으로 유통되었다는 보도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한국 정부는 네덜란드산 살충제 계란이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다고 밝혀 ‘우리는 비켜가나’ 싶었지만 알고 보니 국민을 속인 것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국내산 친환경(바이오) 계란도 그 동안 검증이 부실했음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친환경 계란 10개 중 1개는 바이오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요즘 소비자들은 먹거리 안전을 위해 2~3배의 값을 지불하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찾는다. 특히 바이오 계란을 찾는 소비자들은 무척 늘고 있다. 그러나 ‘바이오’ 계란의 진실은 무엇인가.
 
프랑스 가금사육 기술연구소(l'Institut technique de l'aviculture)에 의하면 가금 생산자는 알 낳는 닭에게 먹일 바이오 곡식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바이오라고 확인된 곡식의 생산은 증가하고 있지만, 이 생산물이 모두 가금 사육에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가금 사육용 먹이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데 우크라이나, 루마니아에서 수입하는 옥수수와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하는 콩은 바이오인지 아닌지 추적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한다. ‘바이오’라고 인증이 되어 있어도 살충제에 오염되었거나 유전자 조작 식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프랑스 농학자 피에르 베유(Pierre Weill)는 이탈리아에서 바이오 아마를 수입했는데 실제는 전혀 바이오가 아니어서 이를 이탈리아 정부에 알렸다. 그러자 이탈리아 정부는 조사에 착수해 이 아마가 몰디브산으로 바이오 제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탄에 빠진 사과 편지를 보내왔다. 수퍼마켓 바이오 식품 코너에 진열된 식품 중 바이오가 아닌 것은 수없이 많고 특히 채소, 우유, 달걀 순으로 많다. 바이오 닭은 야외에서 길러야 하는데 실내에서 먹이로 사육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유럽 농업 사무장 다시앙 시올로스(Dacian Ciolos)는 “유럽연합 내의 바이오 인증을 보다 더 강화하기 위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처럼 바이오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 곳곳에 수많은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보다 엄격한 검열과 인증을 하지 않는다면 바이오 제품은 허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은 어이없게도 친환경 제품의 인증 과정에 ‘농피아’(농식품 공무원+마피아)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소비자들을 충격에 몰아넣고 있다. 친환경 농장의 20%가 농피아 출신이 운영하는 업체에 의해 인증서를 발급받았다는 것이다. 어찌 국민의 생명을 담보하는 먹거리를 가지고 이런 엄청난 장난을 칠 수 있단 말인가. 소비자들은 식품의 안전을 위해 몇 배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친환경 제품을 구입했건만 이렇게 부실인증으로 거짓 포장된 것들이었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우리 사회의 부패가 절대 손댈 수 없는 곳까지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 앞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정부는 바이오 제품이 허구가 아닌 진실이 되도록 보다 꼼꼼한 체크와 검증을 위해 현행 인증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서민들이 계란 하나 마음놓고 사 먹을 수 없는 나라, 그 나라에 우리는 도대체 어떤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이번 계란파동을 계기로 정부는 심기일전하여 농피아를 철저히 수사·처단하고 식품 안전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 건강한 나라는 건강한 국민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법 아니던가.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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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