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세연기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다양한 역할 수행이 눈에 띈다.
시장의 경제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난해부터 굵직한 과징금 부과 결정을 통해 정부의 물가조절 기구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4일 11개 국내 소주업체들이 지난 3년간 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포착했다며 27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규모는 당초 업체들에 보낸 심사보고서의 2조원이상에서 크게 줄어든 10분의 1수준에 그쳤다.
공정위는 "제재수준을 결정할 때 소주업체들이 범정부적인 물가안정대책에 부응해 가격인상폭을 조정하려고 노력한 점을 감안했다"며 경감사유를 밝혔다.
한마디로 담합은 있었지만 정부의 물가관리대책에 잘 따라줬기 때문에 과징금을 줄여줬다는 의미다.
시장의 합리적 경쟁을 유도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시장을 맡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공정위의 역할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다양한 활약(?)은 오히려 '보이는 손'으로써 물가안정을 직접 관리·감독하겠다는 의지로 내비친다.
공정위는 지난해 소주는 물론 우유, 설탕, 밀가루 등 서민생활 제품에 대한 불공정행위 조사에 박차를 가해왔고, 음료와 각종 선물세트 등의 담합에 263억원과 2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해 마치 그 역할이 물가조절 기관으로인 것처럼 오해를 받았다.
담합해서 물가를 올리면 공정위가 가차 없이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써 담합을 막는 목적보다 물가를 못 올리게 하는 것이 우선인 듯한 인상을 대외에 심어준 것이다.
실제로 소주제품의 경우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2%로 지난해 12월(113.3%)보다 0.1%포인트가 줄었고 일년전과 비교해도 1.5%포인트 오른 것에 그치며 비교적 가격 상승폭이 제한된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 서민주인 소주는 지난 2008년부터 정부가 중점관리 하겠다고 밝힌 52개 'MB물가'에 포함되며, 가격 인상등에 대한 기업의 운신폭이 상당부분 제한돼 왔다.
때문에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대해 업계와 시장 전문가들은 경기회복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공정위가 총대를 맨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공정위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각종 규제를 줄여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목표로 민생안정을 위한 식음료, 문화컨텐츠, 교육, 물류·운송, 지적재산권 등 5개 분야의 담합 등을 중점 감시하겠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담합을 감시하겠다고 발표한 계획이 물가 인상을 단속하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며 "공정위가 일일이 간섭한다고 해서 영업질서가 바로 잡히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정호열 공정위원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공정위를 시장의 규제자나 간섭자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단지 시장경제의 파수꾼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최근 공정위의 행보를 살펴보면 공정 경쟁을 유도하는 기능보다는 과징금을 무기로 물가를 조절하겠다는 의욕이 더 엿보이는 것은 왜일까. 공정위 스스로 차분히 생각해볼 일이다.
뉴스토마토 김세연 기자 ehous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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