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이 14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개최에 대한 준비나 국민들의 관심은 충분치 않은 것 같다. 특히 동계올림픽 개최를 활용한 스포츠산업 활성화는 별다른 기미마저 찾을 수 없다. 국가미래연구원은 지난 9월7일 서울클럽(서울 장충동)에서 ‘평창 동계올림픽과 스포츠산업 육성 경쟁력 제고 방안’을 주제로 제22차 산업경쟁력포럼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동계올림픽 관련인사들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스포츠산업의 활성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세미나는 강준호 서울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고 토론자로 김동환 대한스키지도자연맹 교육본부장, 이원재 대한체육회 국제위원회 위원, 곽대희 미시간대 교수, 그리고 박영옥 한국스포츠개발원 원장 등이 참여했다. <편집자>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개최되는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어떤 유산을 남겨야 할까? 스포츠관련 유산만 보면, 서울올림픽은 한국스포츠시스템의 토대를 구축하여 스포츠강국으로 발돋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스포츠강국에서 스포츠선진국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소수 엘리트 선수 중심의 스포츠강국이 아니라 온 국민이 스포츠를 즐기고 누리는 스포츠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풀뿌리 생활스포츠에서부터 스포츠산업까지 체계적으로 연계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주제인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시스템의 일부인 스포츠시장을 활성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표준산업분류체계에 존재하지 않는 스포츠산업
스포츠산업에 대한 학술적, 정책적 논의는 1990년대 이후에 시작되었다. 주로 북미에서는 학술적으로, 일본, 한국, 중국에서는 정책적 목적으로 논의되었다. 대부분의 기존 연구나 논의는 스포츠산업을 공급자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래, 산업이란 용어는 유사한 제품을 유사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공급자들의 합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산업을 분류한 것을 표준산업분류체계라고 한다.
그러나 표준산업분류체계에 스포츠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표준산업분류체계에서 스포츠와 관련 있는 이질적인 산업을 선별하여 그 집합을 ‘스포츠산업’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이와 같은 공급자 관점의 접근법이 갖는 문제는 스포츠산업의 실제 모습과 구조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중심적 관점으로 접근한 ‘스포츠시장가치망’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됐다.
스포츠시장가치망은 스포츠 제도에 기반하고 있으며 크게 본원시장과 파생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본원시장은 스포츠에 관한 법, 제도,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최종소비자들이 스포츠를 소비하는 형태에 따라 관람스포츠시장과 참여스포츠시장으로 구분된다. 관람스포츠시장은 프로선수들이 참여하고 경기결과에 따라 상금이 제공되는지 여부에 따라 프로스포츠이벤트시장과 아마추어스포츠이벤트시장으로 나뉘고, 참여스포츠시장은 상품의 형태에 따라 이벤트시장과 비이벤트시장으로 구분한다.
한편, 파생시장은 개별 본원시장의 일정 규모가 확보되고 활성화됨에 따라 다른 산업영역과 융복합되며 새롭게 창출된 시장을 의미한다. 파생시장은 크게 선수, 코치, 행정가 등 인력개발시장, 용품시장, 시설개발 및 운영시장, 미디어&정보시장, 스폰서십시장, 머천다이징&라이센싱시장, 관광시장, 사업지원서비스시장 등을 포함한다.
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한국스포츠시장가치망의 총 규모는 약 37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중 관람스포츠시장은 약 5.4조원(14.6%), 참여스포츠시장(85.4%)은 약 31.5조원이다. 본원시장은 약 17.2조원 (46.8%), 파생시장은 약 19.8조원(53.2%)이다. 관람스포츠시장에서 본원시장은 약 0.1조원 (1%), 파생시장은 약 5.2조원 (99%)이고, 참여스포츠시장은 본원시장이 약 17.2조원 (55%), 파생시장이 약 14.3조원(45%)이다.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관람스포츠시장은 본원시장이 매우 취약하고 파생시장이 압도적으로 큰 반면(52배), 참여스포츠시장은 본원시장 규모가 큰 데 비해 파생효과(0.83배)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또한 스포츠시장 전체의 87.3%를 세 개의 시장, 즉, 참여스포츠 비이벤트 본원시장(16.9조원, 46%), 참여스포츠에서 파생된 용품시장(11.7조원, 31.8%), 프로스포츠에서 파생된 토토시장(3.4조원, 9.5%)이 차지하고 있다. 관람스포츠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프로스포츠시장에서 전체 파생시장의 76%가 정부가 공급자로 참여하는 토토시장이라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스포츠시장의 핵심인 스포츠이벤트시장이 매우 취약하다.
스포츠시장가치망은 스포츠시장을 활성화기 위한 기본적인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스포츠시장의 발전은 스포츠 제도와 문화의 선진화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장이 제도와 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비산업적 영역, 즉 학교스포츠, 생활스포츠, 전문스포츠 관련 제도와 체계가 선진화되어야 비로소 본원시장이 발전할 수 있다.
둘째, 파생시장은 본원시장의 양과 질에 좌우되기 때문에 스포츠시장 활성화 전략은 본원시장을 확대하고 개선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스포츠산업’은 산업육성전략이 아니라 시장활성화 전략이 필요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한 스포츠시장 활성화 방안의 기본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동계스포츠시장의 제도적 기반구축 및 본원시장 창출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근본적으로 스포츠 관련 제도적 환경을 총체적으로 정비하는 것이다.
동계스포츠시장의 기반구축은 크게 시설확충과 선수·팀·클럽의 육성으로 나뉜다. 설상 종목(스키, 보드)의 경우, 이미 있는 시설을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겨울 이외 나머지 시즌에 대한 비즈니스모델 없이 스키장 공급이 확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빙상 종목의 경우는 전국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저비용 고효율의 시설을 공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물론, 건설비와 운영비 조달계획과 지역사회개발계획을 수반하여 자치단체가 스스로 원하게 해야 한다. 선수·팀·클럽 육성은 학교, 생활, 전문스포츠 육성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 학교스포츠 환경에서는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동계스포츠선수와 팀·클럽을 신설하고 육성하기는 요원하기 때문에 재정적 인센티브 제공과 함께 학교스포츠의 패러다임과 체제를 바꾸는 획기적인 조치가 요구된다.
스포츠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핵심시장이자 본원시장인 스포츠이벤트시장을 발전시켜야 한다. 동계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연령별, 성별, 수준별, 프로퍼티 홀더별로 다양한 동계스포츠이벤트 상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크게 일반인 대회, 아마추어 선수대회, 프로선수 대회, 국제대회 등 다양한 대회가 전략적으로 연계되어 본원시장의 기본 규모를 키우고 질을 제고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동계올림픽 사후 시설활용방안도 동계스포츠 본원시장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스포츠 관련 제도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총체적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된 한국스포츠는 스포츠선진국으로 변모하기 위한 비전과 전략이 절실히 요구된다. 종목별로 지속가능한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정교한 계획을 수립하고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연령별, 성별, 수준별 선수·클럽·팀 육성, 스포츠이벤트 혁신, 기존시설활용 및 신규시설확보, 스포츠콘텐츠 유통 개선, 경기연맹의 거버넌스 개선과 경영혁신, 스포츠관련 재정의 획기적 확대, 기업의 스포츠후원 관련 제도적 인센티브 강화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동계스포츠시장을 창출하고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서울올림픽을 통해 하계스포츠시장의 제도적 기반과 수요가 만들어졌듯이, 평창올림픽을 통해 동계스포츠시장의 기반을 구축하고 본원시장의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계절과 시설에 영향을 받는 동계스포츠는 시장 확대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평창 올림픽, 스포츠 강국 넘어 ‘스포츠 선진국’ 전환점
대한민국의 스키산업은 현재 침체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평창 동계올림픽을 발판으로 재도약 하지 못한다면 장기적 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본원시장의 기본 규모를 키우고 질을 제고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스키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학생단체 프로그램의 질적 개선, 스키안전 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 스키참여 대상의 확대, 비시즌 활동을 위한 인프라 개발 등이 매우 중요하다
올림픽은 가장 성공적인 플랫폼 비즈니스 중 하나다. 7개 동계 종목들이 자신들만의 이벤트 또는 플랫폼 생태계를 키워 나가는 것도 장기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소위 ‘롱테일의 법칙’이 작동할 수 있는 동계종목의 ‘종합 스포츠 이벤트’ 플랫폼인 동계체전을 우선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효율적인 동시에 효과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최근 한국 스포츠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인 ‘전문(또는 직업) 스포츠’와 ‘생활(또는 취미, 아마추어) 스포츠’의 통합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잘 올라타는 것도 필요하다. 이 같은 유기적으로 결합된 선순환 구조가 동계체전이라는 플랫폼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이 지나 개최되는 평창 올림픽을 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관람스포츠와 참여스포츠는 상호보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시장 활성화의 관건이다.
스포츠산업의 본원시장을 키우는 것은 경제적 가치 창출 외에도 ‘사회적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스포츠의 가치를 확산하는 순기능이 있다.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을 통해 관람 및 참여를 통한 신체적, 정서적, 사회 심리적 효용을 누리는 잠재소비자를 확대해 나가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파벌싸움, 승부조작, 선수폭력과 같은 비정상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관행들이 뿌리 뽑히지 않는 이상 한국이 스포츠선진국이 되는 길은 요원하다. 스포츠 본연의 가치와 기능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필요한데, 평창 올림픽이 그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동계 종목의 보급 활성화 추진도 미미하고, 스포츠산업 발전을 제대로 추진하고 있지 못한 점이 아쉽다. 스포츠산업은 스포츠관련 수요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장이기 때문에 시장 수요를 선제적으로 파악해서 제공하는 스포츠시장 수요 전망이 병렬되어야 한다. 스포츠산업체 활성화 정책은 대량생산 기업도 있지만, 종목으로 분할된 시장이므로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기업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반 산업정책으로는 육성이 어렵기 때문에 별도의 지원시책이 필요하다. 특히 스포츠산업은 고용유발 효과가 큰 산업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제19회 전국문화관광해설사 대회에서 정창수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참석자들이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한 친절다짐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