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건설부문 본사가 있는 알파돔시티 2동 전경.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삼성이 삼성물산 합병무효소송에서 승소해 지배구조 문제로 확산될 뻔했던 위기를 일단 넘겼다. 이재용 부회장의 5년 실형 충격에 흔들렸던 삼성은 한고비를 넘기고 체제를 정비할 시간도 벌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무효 소송 1심에서 삼성이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함종식 부장판사)는 19일 합병의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일성신약 등 소액주주들의 합병무효 청구를 기각했다. 일성신약 측이 항소할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은 고비를 넘긴 셈이다. 유죄 판결이 났을 경우 손해배상청구를 비롯해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됐다. 2심을 진행 중인 이 부회장의 재판이나 삼성물산 합병 관련 주식매수청구가 소송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삼성은 전날 삼성물산 압수수색 등 이건희 회장 일가의 자택공사비리 수사까지 겹쳐 사법 리스크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이번 승소판결로 한시름 놓는 분위기다. 삼성은 주위 여론을 의식해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짤막한 공식입장만 내놨다. 삼성 관계자는 "합병이 적법하다는 이번 판결이 이 부회장 재판에서도 인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초 합병 등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인정된 이 부회장 1심 5년 실형 유죄판결에 따라 이번 재판에서도 삼성 측이 불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앞서 법원도 지난해 말 1심 선고를 미루면서 특검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재판을 진행키로 했었다. 이 때문에 이번 재판은 선고까지 1년8개월여 장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결국 이 부회장 재판과는 다른 판결을 했다. 거꾸로 합병에 문제가 없다는 이번 판결이 이 부회장의 2심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각각의 법원이 얼마든지 판단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사례로 확인됐다. 특히 재판부는 “이 사건 합병이 포괄적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고 하더라도 경영상의 합목적성이 있었으므로, 경영권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라며 “특정인의 기업에 대한 지배력 강화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지배력 강화를 위한 합병이라는 사정만으로 목적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영권 승계 목적 유무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으면서, 이 부분이 뇌물 청탁 여부과 결부된 이 부회장 재판과는 일정부분 선을 그었다. 주식매수청구가 소송도 법원이 1심에선 삼성을, 2심에선 소액주주 손을 들어줘 대법원 판결도 예측이 쉽지 않다.
삼성물산 합병무효 판결 시 지배구조 문제로 확산될 수 있었지만, 1심 승소 판결로 시간을 번 삼성은 한동안 체제 정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삼성은 최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용퇴를 시작점으로 그동안 미뤄졌던 사장단 인사도 빠르면 이달 내 실시하는 등 체제 정상화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속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이 부회장은 세대교체를 통한 친정체제를 구축해 ‘옥중경영’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