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정부가 성공하기 위해 '과잉 대통령' 피해야

입력 : 2017-10-24 오전 6:00:00
흔히 한국의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 한다. 이 말은 본래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Arthur M. Schlesinger Jr.)가 저서 <제국의 대통령직>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막강한 권위를 빗대 사용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고 결국 닉슨보다 더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촛불혁명과 함께 한국 정치사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새 정부 수장인 문재인 대통령도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문 대통령이 각종 정책 기획위원회를 만들고 근로기준법 개정 등 노동개혁을 지시함으로써 총리나 장관의 역할까지 도맡아하자 ‘제왕적 대통령’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러한 야당의 비난에 힘을 실어주고 싶지 않지만, 문 대통령의 정치행보를 보면 과거 대통령들의 제왕적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어 새 정부를 구성하고 이낙연 총리와 17개 부처의 장관을 임명했지만,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대통령 한 사람이 받고 총리나 장관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원자력발전 정책이 이슈화 될 때도, 노동정책을 이야기 할 때도 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장관이 아닌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이렇게 문 대통령이 장관들의 역할까지 도맡아 한다면 도대체 장관은 왜 필요한 것인가.
 
2007년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니콜라 사르코지는 문 대통령처럼 모든 분야에 자신이 직접 나서 진두지휘하길 좋아했다. 그는 수상이나 재정부 장관이 나서야 할 상황에도 자신이 직접 나서서 거침없는 정치행보를 이어갔다. 결국 프랑스 언론은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과잉 대통령’(hyper president) 혹은 ‘도처에 나타나는(omnipresent)’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줬다. 그의 스타일을 놓고 ‘과잉 대통령직’(Hyper presidence)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그 후 2012년 엘리제의 새 주인이 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초기에는 사르코지 대통령처럼 과잉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올랑드 대통령은 바로 수상과 장관들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특히 약관의 30대 장관들을 기용해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받게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현재의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마크롱을 경제부 장관으로 기용해 경제개혁을 단행할 ‘마크롱법’을 만들게 했고 이를 계기로 무명이었던 마크롱의 인지도는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차세대 리더로 급부상했다.
 
결국 마크롱은 올해 6월 대통령의 권좌에 올랐고 올랑드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유능하고 스토리가 있는 젊은 장관들을 발탁해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국민적 관심을 끌게 한다. 그 중 35세의 제랄드 다르마냉(Gerald Darmanin) 예산장관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 다르마냉 장관은 알제리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1982년 프랑스 북부 발랭시엔느(Valenciennes) 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의 지배인이었고 어머니는 은행의 청소부였다. 다르마냉은 우수한 성적으로 엘리트 코스인 릴(Lille)의 시앙스포(정치대학)를 졸업했으며 16세에 정치에 입문했고 유럽국회 보좌진으로도 일했다. 이후 공화당 청년들을 지도하는 지도부에 들어가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마크롱 대통령에 의해 예산장관으로 발탁됐다.
 
지난 11일 파리마치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또 3%포인트 하락해 50%를 기록한 반면 다르마냉 장관은 유명세를 타고 9%포인트 오른 26%를 기록,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올랑드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그에 걸맞은 역할을 분담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함으로써 ‘정부를 이끄는 것은 대통령 혼자가 아니다’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차세대 정치인을 발굴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치는 여전히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장관은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만기친람 식으로 관여하는 것을 자제하고 총리나 장관들을 내세울 줄 알아야 한다. 과거처럼 대통령이 모든 것을 독식하려든다면 이번 정부도 실패할 공산이 크다.
 
훌륭한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나서 모든 것을 지휘하는 과잉 대통령이 아니다. 총리와 장관들이 직접 나서 정책을 이끌고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과 기회를 주고 나아가 차세대 리더를 발굴·육성해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의 지지율만을 측정하지 말고 각 부처장관들의 지지율도 측정해 발표함으로써 국민의 이목을 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이 제 아무리 발 벗고 뛴다 한들 제왕적 대통령이란 닉네임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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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