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서고 적폐청산이 시작되었다. 그 신호탄은 국가정보원 개혁이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조사 등을 통해 과거 정부에서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의 반민주적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증거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박근혜정부 뿐만 아니라 이명박정부에도 존재했으며 더욱 심각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이명박·박근혜정부를 지지하지 않았거나, 이 두 대통령이 싫어한 정치인들을 지지한 것이 이유가 됐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어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인정되어야 한다. 특정인을 지지했다고 해서 어떠한 불이익을 주거나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두 보수 대통령은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거짓 약속한 그들은 지금을 21세기가 아닌 ‘짐이 곧 국가’인 중세시대로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만 구시대적이고 봉건적이었던가. 지금의 새 정부는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 5월 장미대선이 끝나고 청와대에 터를 잡은 문재인 대통령은 권위주의의 탈을 벗으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노타이’ 차림으로 국민들 앞에 다가서는 서민 행보를 시작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환호했고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난 지금 문재인정부는 과연 탈권위적이고 현대적으로 바뀌었나. 지난 보수정권들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나. 인사문제만 놓고 보면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작정치의 극치를 달린 두 보수 정권과 새 정부를 비교한다고 심기가 불편할 국민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인사 참사를 놓고 새 정부가 과연 국민의 염원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비판해 볼 필요성이 있다. 인재를 기용한다면서 실제는 지난 대선 캠프에서 일한 측근들을 기용하기에 바쁘다. 보수정권으로 망가진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여야를 넘나드는 인재를 찾아 기용하는 것이 마땅하나 전혀 그렇지 못하다. 어디 이래서야 두 전직 대통령이 망가뜨린 한국정치를 재건할 수 있겠는가.
프랑스는 어떠한가? 문 대통령처럼 지난 5월 엘리제궁에 입성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내각을 꾸릴 때 감성에 호소하기보다 이성에 입각한 인재풀을 가동했다. 정치색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재를 찾아 20여명의 장관을 발탁했을 때 프랑스인들은 마크롱의 인사정책에 갈채와 경외감을 보냈다. 프랑스인 69%는 마크롱 대통령의 새 내각에 만족했고, 특히 프랑스인의 75%는 마크롱 대통령이 방송인이자 환경운동가인 니콜라 윌로를 정부 서열 3위의 환경부 장관에 임명한 것에 대해 열렬히 환호했다.
그러나 윌로 장관은 지난 달 30일 <프랑스 엥포(France Info)>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에서 자기를 장관으로 기용해 준 마크롱이 아닌 사회당 브누아 아몽에게 투표했음을 밝혔다. “내가 만약 진실을 말한다면 나는 1차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주제(환경문제)들이 좀 더 밀도 높게 강화되었으면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윌로 장관은 마크롱정부에 합류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 나라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것이 있고, 특히 내가 가지고 있는 주제에 관해서는 철저한 변화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경쟁적 민주주의를 약간 멈춰야 한다”고 답했다.
윌로 장관은 마크롱정부에서 그의 미션을 계속 수행할 것을 밝히며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모두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장관되어 기쁘냐’는 질문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 감정이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 마크롱정부는 적어도 감성이 아닌 이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윌로 장관은 지난 대선에서 마크롱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았고 더욱이 대선 캠프에서 발 벗고 마크롱을 돕지도 않았다. 단지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환경 문제를 제대로 다룰 최고의 적임자를 찾다보니 윌로가 떠올랐고, 결국 그에게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민 것뿐이다. 마크롱정부의 에두아르 필리프 수상과 브뤼노 르 메르(Bruno Le Maire) 경제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지난 대선에서 마크롱을 돕지 않았다. 오히려 마크롱의 적수였던 공화당 피옹 후보 캠프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이번 문재인정부도 국가 재건을 위해서는 자기 사람을 쓰기보다 인재풀을 넓혀야 한다. 한국정치가 실패를 거듭하는 가장 큰 요인은 ‘톨레랑스(관용) 제로’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혁신을 위해서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자기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들을 배제하기보다 통 크게 기용할 줄 알아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진정으로 성공을 원한다면 이제부터라도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인사문제에 접근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