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금리인상이 가시화된 가운데 적정수준의 유가가 산업경기를 지탱하고 있다. 통화 긴축은 경기 위축 요인이지만, 수주업·산업재 등 국내 산업계는 유가에 더욱 취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국제유가가 50달러선에 안착하면서 조선 등 구조조정 산업이 흑자로 돌아섰고, 산업재 일부는 호황을 맞았다. 유가가 현 수준의 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산업경기 회복도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리인상에 따른 통화 긴축 흐름이 본격화된다. 미국은 12월 중 추가 금리인상에 나선다. 유로존 역시 내년부터 긴축 기조로 돌아선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오는 26일 통화정책회의에서 내년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발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국과의 정책금리 역전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한국은행도 금리인상 논의가 활발하다.
통화 긴축으로 투자와 소비가 줄면서 경기 회복세에 찬 물을 끼얹을 수 있다. 신흥국 시장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요인으로 작동한다. 신흥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에겐 특히 부정적이다. 한미 간 금리 역전 시에는 이 같은 후폭풍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 다만, 국내 외환시장 건전성이 개선돼 심각한 자금 유출은 없을 것이란 낙관도 존재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3일 “한미 기준금리 역전에도 급격한 자본 유출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인상은 경기가 양호하다는 근거로도 해석된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초 20달러대에서 이달 20일 기준 55달러대까지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석유개발 수요와 관련 물동량이 넘치는 고유가의 호황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조선·해운·철강·플랜트 등은 구조조정과 더불어 유가의 뒷받침으로 흑자를 내고 있다. 세계 자원개발 투자가 올해 증가세를 보이고 해양 프로젝트 투자도 바닥을 통과할 것으로 점쳐지는 등 전방 수요도 개선되고 있다.
정유·화학업종은 이미 호황에 들어섰다. 유가 등락이 크면 재고평가손익도 커지지만 저유가 보합 국면에선 수요확장 이득만 얻는다. 덕분에 사상 최대 마진 수준의 제품도 생겨나고 있다. 원유에서 추출하는 에틸렌(석유화학원료) 제조설비(NCC)는 미국 허리케인 영향으로 반사이익까지 겹쳤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화학제품 마진이 좋다”면서 “특히 에틸렌이 워낙 좋아 업체들의 사상 최대 실적도 어렵지 않다”고 귀띔했다. 국내 화학업체들은 에틸렌이 주력이며, 정유사들 역시 에틸렌 위주로 화학 신사업을 꾸려 골고루 수혜다.
유가는 미 셰일오일 등의 생산이 늘어나는 가운데 중동 산유국들의 감산으로 내년까지 50달러대 박스권 유지 전망이 우세하다. 트레이딩 기업인 글렌코어는 유가 하락으로 산유국들이 재정문제를 겪는 등 OPEC이 감산기간을 연장할 유인이 충분하다고 봤다. 유가 폭락으로 문을 닫았던 미국의 석유 시추리그 수는 지난해 바닥을 지났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내년 미 평균 원유 생산량의 역대 신기록을 예측했다. 미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화 강세도 유가에 하방압력을 준다. 에너지 주도권을 잡기 위한 OPEC과 미국의 줄다리기가 50달러선에서 팽팽한 균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은 “내년 3월까지 예정된 산유국의 감산 합의가 추가 연장될 조짐”이라며 “미 셰일오일은 국제유가가 50달러 선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도록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달러 강세로 환율이 강세를 띠면 수출에도 도움이 된다. 반도체 호황도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라, 여타 산업재의 경기 회복세를 더해 당분간 안정적 성장기조에 힘이 실린다. 기업들의 호실적 전망이 이어지며 코스피는 23일 장중 한때 사상 최고치인 2500선을 돌파했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 상승하며 2년9개월래 최고치를 찍었다. 원자재가격 상승 영향에다,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내수가 반응한 신호로 읽혀진다. 지난달 월간 수출액은 사상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