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구름 한 조각 걸려 있지 않은 공활한 푸른 하늘은 꼭 청정바다의 어느 지점처럼 느껴졌고, 바람에 하늘거리는 형형색색 벌룬들은 신선한 가을 향을 연신 뿌려대는 듯 했다. 드넓은 잔디 위 파스텔톤 돗자리를 편 솔로, 연인, 친구, 가족들은 눕거나 와인을 홀짝였고, 가을 풍경을 빼닮은 음악들은 그런 이들의 귓가에 쉼 없이 깊은 잔향을 울렸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2017(그민페·GMF 2017)’은 그렇게 모인 4만명의 가슴 속에 가을날 정취를 한가득 심으며 어느 해보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2017' 전경 모습. 사진/권익도 기자
‘그민페’는 국내 공연기획사 민트페이퍼의 주최로 매년 가을 시즌에 맞춰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이다. 11회째 맞은 올해는 21~22일 양일간 서울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진행됐다.
그민페의 강점이라면 명확한 페스티벌의 정체성이다. ‘민트’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상큼함을 콘셉트로 가을날의 피크닉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라인업 역시 그러한 콘셉트에 맞춰 ‘가을을 닮은’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다. 올해 역시 이들의 은은하고 멜랑꼴리한 음악들이 야외무대든, 실내공연장이든, 곳곳의 축제부스든 어디서나 상쾌한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겼다.
21일 데이브레이크의 공연이 펼쳐졌던 '러빙포레스트가든'. 사진/권익도 기자
올해 행사는 민트브릿지와 클럽미드나잇선셋, 러빙포레스트가든, 블로섬하우스 총 네 개의 스테이지에서 진행됐다. 민트브릿지는 규모가 가장 컸던 메인 무대로 공원 내 88잔디마당에 위치했다. 잔디에 돗자리를 펼치고 누워 공연을 감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스탠딩존에서 아티스트들과 음악적 교감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부스에서 파는 음식이나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축제 자체를 여유있게 즐기려는 관객들도 많았다.
서브 무대들은 메인무대 못지않게 알차게 꾸며졌다. 러빙포레스트가든(88호수 수변무대 위치)은 호수를 배경으로 계단에 앉아서 볼 수 있게, 카페블로섬하우스(핸드볼경기장 2-1 게이트 앞)는 소극장처럼 아늑하게 꾸며졌다. 또 헤비한 록이나 힙합 공연에 대한 갈증이 있는 이들을 위해선 클럽미드나잇선셋(핸드볼경기장)이란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5년 만에 GMF를 찾은 검정치마가 텐버린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권익도 기자
올해 가장 눈에 띄었던 팀을 꼽자면 첫 날 저녁에 등장한 ‘검정치마’였다. 2012년 이후 5년 만에 민트브릿지 무대에 선 그는 어둠 속 반짝이는 조명을 뒤로 하고 최근 발매한 3집의 ‘난 아니에요’를 읊조렸다.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 꺼진 불 속 조용한 관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주세요” 바깥 세상과 내 안의 충돌로 발생하는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곡은 안개 같은 기타의 디스토션과 겹쳐지며 공연장 전체를 고요하게 만들었다.
이후 직설적인 사랑 노래들로 화제를 전환, ‘혜야’, ‘한시오분’, ‘Everything’ 등으로 첫 곡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몽환적인 사운드가 “난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혜야)”라거나 “you are my everything(Everything)”이라는 가사와 겹쳐지며 은은한 분위기를 풍겨냈다. “날씨 참 좋네요”라는 말만 두 번이나 할 정도로 특징적인 멘트는 없었지만 후반부에 ‘좋아해줘’나 ‘Antifreeze’, ‘Biglove’ 같은 곡을 할 때 객석은 순간 ‘떼창’으로 달아오르기도 했다. 색종이가 든 투명 공들과 꽃가루들, 그민페의 곰돌이와 토끼 마스코트도 그의 무대를 화려하게 빛냈다.
첫째날의 ‘멜로망스’와 둘째날의 ‘유승우X정세운’ 공연은 ‘남성 듀오’의 파워를 각인시켜준 무대였다. 첫 날 해 질 무렵 ‘러빙포레스트가든’ 무대에 선 멜로망스는 대표곡 ‘선물’부터 ‘질투가 좋아’, ‘입맞춤’, ‘좋아요’, ‘나를 사랑하는 그대에게’ 등을 선보였다. “많이 즐겨주시길 바라겠습니다. Let’s go party time!” 훈훈한 외모에 재지한 감성이 돋보이는 노래들로 여심을 사로잡은 이들은 이날도 통통 튀는 듯한 건반 연주(정동환)와 매력적인 김민석의 보이스로 팬들의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특히 공연 시작 후에는 입장 제한이란 푯말이 내걸렸는데도 이들을 보려는 이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22일 ‘유승우X정세운’의 공연에도 많은 팬들이 몰렸다. ‘민트브릿지’의 첫무대에 선 그들은 ‘선’, ‘예뻐서’, ‘오해는 마’, ‘우주를 건너’ 등을 선보였다. 부드러운 미성으로 부르는 둘의 하모니가 비눗방울에 실려 흐르자 여성 팬들의 함성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잘생겼다”, “노래 좋아요”
이 외에도 이틀간의 공연 동안 ‘칵스’와 ‘솔루션스’, ‘페퍼톤즈’, ‘노리플라이’, ‘장희원’, ‘데이브레이크’, ‘정준일’, ‘심규선’ 등의 무대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22일 헤드라이너로 선 십센치 권정렬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사진/권익도 기자
마지막 날 ‘십센치’의 무대는 공연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였다. ‘Pet’, ‘별자리’, ‘Everything’ 등 최근 발매한 4집 ‘Everything’부터 ‘그게 아니고’, ‘은하수다방’, ‘아메리카노’ 등 데뷔 초 곡들까지 다양한 음악들을 들려줬다. 특히 ‘폰서트’를 부를 때는 관객들의 핸드폰을 직접 들고 자신의 노래 부르는 영상을 찍어 건네주는 ‘팬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모든 순서가 끝난 후 앵콜 요청이 쇄도 하자 그는 “사실은 제가 정말 더 아쉽다”며 운을 뗐다. “사실은 여러분들보다 끝내기 아쉬운 건 저입니다. 저는 앨범 작업을 할 때 항상 GMF 무대에서 관객 여러분과 함께 부른다는 상상을 하며 곡을 쓰거든요. 올해 4집 앨범을 준비하면서 이 순간을 너무도 기다려 왔었어요.”
그러더니 셋리스트에 못담아 아쉬웠던 곡들을 기타로 연주하며 들려줬다. ‘내 눈에만 보여’, ‘킹스타’, ‘10월의 날씨’ 등이 메들리처럼 흘렀고 관객들도 따라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분리수거 자원봉사단들이 관람객을 돕고 있는 모습. 사진/권익도 기자
11년이란 세월만큼 축적된 주최 측의 운영 노하우는 행사를 더 빛나게 해줬다. ‘리사이클링’이란 표시가 달린 부스 곳곳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관객들의 쓰레기 분리수거를 돕는 모습들이 공연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아티스트들은 모두 자기 차례의 시간을 정확히 지켜 다음에 무대에 서게 될 이들을 배려했고 운영진은 ‘클럽미드나잇선셋’이란 별도의 공간을 둬 전체의 공연 콘셉트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신나는 음악을 원하는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줬다.
안전요원들은 페스티벌 동선 곳곳에 배치돼 혹시 모를 사고에 대처하기 위해 만전을 기했고 자원봉사자들은 관객들이 가는 길에 서서 “안녕히 가세요”라며 배웅했다. ‘가을 대표 축제’라는 아름다운 수식어가 빛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첫날의 대미를 장식한 데이브레이크의 공연 중 꽃가루가 흩날리고 있다. 사진/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