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래연구원)"구조조정으로 주력 산업에 혁신적 투자해야"

"투자주도성장, 경제성장 견인…우수한 중견·대기업도 지원을"

입력 : 2017-10-25 오전 6:00:00
문재인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다. 국가미래연구원은 최근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와의 대담(황희만 전 MBC부사장 진행)을 통해 그 파급효과와 성공조건 등을 알아보았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편집자>
 
-황희만: 문재인정부에서 소득주도경제성장 정책을 내걸고 나왔는데 이것이 어떤 내용인지 설명 부탁드린다.
 
▲표학길: 소득주도경제성장이라는 것은 비주류 경제학, 크게 보면 칼레키안(Kaleckian) 모델, 네오 막시스트모델이라든가, 네오 리카디안 모델이라든가하는 비주류 경제학에서는 20년 전부터 대두돼 온 성장정책이론이다. 기본적으로는 소득이 늘면 소비도 늘고 소비가 늘면 투자도 늘지 않겠느냐, 투자가 늘어나서 다시 선순환구조로 소득도 늘어나 성장을 하는 그런 선순환구조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황희만: 어떤 배경에서 그런 정책이 나온 것인가.
 
▲표학길: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특히 주요 선진국 중심으로 소득과 부의 양극화 현상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하나의 배경이다. 또 한 가지는 세계경제가 상당히 저성장에 허덕여 왔다. 소득도 양극화되고, 성장도 침체되고 하니까 특히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라든가, 국제노동기구(ILO)같은 기구에서 중간 내지 중하위 소득자들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성장정책을 추진해야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제기됐던 것은 ‘임금주도성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임금주도성장만을 가지고 임금은 올라갈지 모르지만, 최극빈자 중 아예 노동을 안 하는 노년계층, 극빈자 중에서 일을 못하고 실업 상태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실효가 없다. 따라서 이전소득 및 복지소득을 좀 더 포괄적 소득으로 사용해야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해서 임금주도성장정책이 소득주도정책성장으로 바뀐 것이다.
 
투자주도성장 고려해볼 만
 
-황희만: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실제로 정책에 대입시켜 성공한 나라들이 있나.
 
▲표학길: 굳이 예를 들자면 1990년대부터 유럽, 특히 이태리, 그리스, 포르투갈, 한때는 영국 등의 나라들이 사회당정부 하에서 그런 정책을 추진했다. 영국 사회당정부의 경제정책 모토가 ‘제3의 길’로 표현하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제1의 길’이 자본주의, ‘제2의 길’이 공산주의다. 그런데 결국 둘 다 실패한 것 아니냐. 그래서 혼합적인 제3의길, 자본주의로 가되 사회주의 색깔을 강하게 집어넣은 노조를 보호한다든가 여러 사회주의 정책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 때 소득주도 정책을 많이 썼다고 볼 수 있다. 공공부문의 노조가 강성노조였으니까 공공부문의 임금을 확실히 올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프라 투자도 계속 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소득주도 정책을 추진했는데 결과는 상당히 실패작이었다.
 
재정부담이 커지고 그 재정위기가 금융위기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가 대표적인 케이스였고, 포르투갈, 스페인, 이태리가 한 때 굉장히 어려웠다. 모두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황희만: 우리 사회에서 소득주도성장정책의 함의는 무엇인가.
 
▲표학길: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의미가 소득이 양극화됐으니 완화시키는 정책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있어 상당히 매력적인 구호로 들릴 수 있다. 또 그와 동시에 문재인정부는 일자리 창출 정책을 같이 묶어 추진하고 있다. 제대로만 추진하면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이라고 본다.
 
-황희만: 어떤 조건이 성공조건인가.
 
▲표학길: 서너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는데, 성공조건의 첫 번째는 후기 케인즈안(Keynesian)들이 여러 논문을 통해서 발표한 결과다. 특히 최근 발표된 논문을 자세히 보면,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추진하면 두 가지 채널이 가능하다고 본다. 소비를 자극해 소비가 투자로 연결이 돼 투자가 성장을 촉진하는 이러한 한 채널이 있는데, 소비가 부채로 충당이 될 때,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태일 때는 버블이 생겨 선순환구조로 못 간다는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양질의 소비증대로 이어지면 좋은데, 그 소비가 거품을 낀 소비, 즉 부채를 쌓으면서 가는 소비구조는 양질의 투자로 연결이 안 된다는 논리다.
 
또 하나의 채널은 소득주도성장이 투자자체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투자 자체를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투자증대를 통해 수출도 증대시킬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양면적인 칼날을 가지고 있다.
 
정부에 말하고 싶은 것은 너무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하지 말고, 소득주도성장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투자주도성장이라는 점이다. 소득주도성장에 대립되는 개념은 당연히 이윤주도성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윤주도라고 하면 재벌 위주의, 일반인들이 이윤이라고 하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윤주도라 하지 않고 투자주도로 표현하고 싶은데, 이윤을 쌓아야 하는 이유는 투자를 위해 이윤을 쌓는 것이다. 투자주도성장정책 쪽으로 전환하는 것이 타당하다.
 
-황희만: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임금을 올려주지 않겠느냐, 이렇게 임금올리기를 기대한다면 임금이 생산성에 따라서 결정이 돼야 할 텐데 이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표학길: 후기 케인즈안들이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소득주도성장, 임금주도성장이 성공하려면 임금을 억제할 줄 아는 사회적인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지난번 정부에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앞으로 계속적으로 인상할 것이라 예시했다. 저는 예시를 한 것은 참 좋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임금억제라기 보다 임금자제(wage restraint)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을 인상했다고 해서 나머지 임금이 다 연동돼 올라가버리면 소득주도성장정책, 임금주도성장정책 효과가 나타날 수 없다. 이것은 결국 이윤율을 하락시킬 것이고, 이윤율이 하락되면서 투자가 안 될 것이고, 투자가 안 되면 수출경쟁력이 굉장히 낮아질 것이고, 수출 부문 비중이 큰 나라는 국내총생산(GDP)도 성장률이 낮아지지 않겠는가. 그 악순환 구조로 가는 중요한 정책변수가 임금을 자제할 줄 아는 사회적 인프라다.
 
제가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렸다. 하나는 소득주도성장이 선순환구조로 가려면 투자주도로 옮겨야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임금을 자제할 줄 아는 사회적 제도와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불행하게도 전 세계 경제 발전양상을 보면 비주류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다. 전 세계는 소득만 양극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구도도 완전히 양극화하고 있다. 그것이 주류경제학에서 최근 나온 내생적 성장이론, 신성장이론이다. 쉽게 말해서 결론은 덩치가 큰 쪽이 이기게 돼있다. 큰 나라가 이기게 된다는 것이다.
 
신성장 이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가 인적자본이다. 그런데 아무리 후진국이나 개도국에서 우수한 인적자본을 보유하고 있어도 절대적인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 등 외부경제요건이 집적돼 있는 나라는 빠른 속도로 더 폭 넓게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 구글, 유튜브, 애플 등 전 세계적 글로벌기업들이 꼭 미국에서만 나타나는가. 우리가 소득주도성장에 너무 집착해 그것을 바이블이라 생각하고 달려들면 시대에 상당히 뒤떨어지는 정책일 수 있다.
 
한국경제가 어떤 식으로 가야 할 것인가. 투자주도성장정책으로 가야한다. 일자리 정책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양질의 일자리를 가져오기 위해서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정부재정배분이 생산성 위주로 돼야지 일자리 창출 위주가 돼서는 안 된다. 정부의 일자리 추진정책도 유연하게, 생산성 향상 쪽으로 바꾸어야한다.
 
산업 구조조정 집중해야
 
벤처산업에서도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해 혁신밖에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 그런데 저는 두 가지 면에서 우리가 추진해야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먼저 구조조정이 돼야 한다. 구조조정이 사실상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하다 올스톱한 상태다. 지금 조선업이나 일부 사양산업의 구조조정이 전면 중단된 상태에 있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혁신형 투자에 돌아갈 자금이 안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구조조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소위 산업 내 구조조정, 즉 같은 산업 내에서도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을 흡수해나가는 것이다. 지금 경쟁구조를 따질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공정거래법을 따지는 것이 좋긴 하나, 그것이 결국은 선순환구조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악순환구조로 가기위한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산업 내 구조조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고, 그다음이 산업간 구조조정, 즉 어떤 산업 쪽으로 몰아주고 다른 산업을 빠른 속도로 사양화시키는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
 
그 다음 우리나라 경제 공동체의 운명은 중견기업에 달려있다. 중견기업이 빠른 속도로 대기업화, 글로벌기업화 돼야 중소기업이 따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중견기업 중심으로 혁신적인 투자주도 정책이 추진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쉽게 말해 우리가 주력으로 잘하는 산업에서 혁신적인 투자를 먼저 선도해야 한다.
 
변방에 있거나 벤처라는 것은 박근혜정부에서도 수없이 많은 벤처 정책을 고안해 추진했지만 결국 얻어진 성과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통계를 보면 100개의 벤처기업이 생성되면, 3년 후 5%~10%가 살아남는다. 그렇기에 결국 혁신적 투자는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경쟁력 있는 중견기업, 대기업 중심으로 혁신형 투자를 선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애로사항은 여러 금융지원, 세제지원보다 경영승계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고용을 승계하는 2세경영이나, 2세 창업주, 2세 상속인, 다시 말하면 현재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투자의 주체라고 볼 수 있는 그런 분들한테 인센티브를 줘야한다.
 
독일의 중소기업들은 상속될 때 엄청난 세제지원을 해주고 있다. 특히 고용을 승계해준다고 할 때 그러한 기업의 투자에서는 세제지원 감면을 더 해준다, 우리가 경영적 차원에서도 전환기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기업환경에 처했다고 본다. 정부가 그런 면에서 물꼬를 터주는 투자주도 성장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황희만: 문재인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고 다양한 현실 문제를 살펴봐야 성공의 길로 가지 않나 생각이 든다.
 
지난 9월26일 국가미래연구원 스튜디오에서 소득주도성장정책 관련 좌담회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황희만 전 MBC부사장이다. 사진/국가미래연구원
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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