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이재용 부회장이 옥중에서 ‘뉴 삼성’의 밑그림을 내놨다. 50대 CEO(최고경영자)로 물갈이한 삼성전자 수뇌부가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다. 이사회 중심 체제로 전환할 의도도 내비치면서 그룹 컨트롤타워 부재를 해결하는 실마리도 제시했다. 이 부회장의 측근들이 중임을 맡아 친정체제도 강화된다. 부친세대는 이 과정에서 정리됐다.
‘미전실 부활’ 꼬리표가 고민이었던 삼성은 이사회 중심 체제로 과제를 풀어간다. ‘삼성 저격수’로 불렸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컨트롤타워 부재는 ‘모순’이라며 해법을 촉구하기도 했다. 내달 2일 5대그룹 면담에서 삼성은 새로운 모습으로 김 위원장을 마주한다. 이사회는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는 만큼 총수 1인체제의 ‘배후조직’이란 비판적 시각도 피해갈 수 있다. 책임경영 강화와 리더십 공백, 두 가지 과제를 해결했다.
무수하게 하마평에 올랐던 이상훈 사장이 결국 권오현 부회장(대표이사)의 후임으로 이사회 의사봉을 잡는다. 이 사장은 2012년부터 맡아온 경영지원실장(CFO) 자리에서 사퇴했지만 사외이사들에 의해 이사회 의장으로 추천됐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 회사 자문 역할에 그쳤던 전례들과 딴 판이다. 이 사장은 이 부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이번 인사를 이 부회장의 ‘친정체제’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더욱이 이 사장은 과거 구조조정본부, 미래전략실 등 그룹 중심에 몸 담았던 핵심 인사다. 전통적으로 삼성 2인자 역할을 해왔던 재무통이란 특성도 만족시킨다. 이 사장은 이 부회장 구속 후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세청장 초청 간담회에 삼성전자를 대표해 참석했다. 31일 삼성전자 기업설명회(IR)에서 3개년 주주환원정책의 중대 사안을 발표한 것도 그다.
이 사장은 CFO 자리를 양보하며 경영 일선에선 물러나지만 이 부회장의 의사를 전달하며 이사회 역할에 집중할 수 있다. CFO 자리엔 역시 이 부회장 측근으로 알려진 정현호 전 미전실 인사팀장이 복귀해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 유력하다. 정 전 팀장은 미전실 해체 당시 팀장급 전원이 사표를 제출해 회사를 떠났지만, 이 부회장이 다시 불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팀장은 이 부회장의 유학 시절 곁에서 보좌하는 등 신임이 두텁다는 전언이다. 그 또한 과거 비서실 재무팀, 삼성전자 국제회계그룹장 및 국제금융그룹장 등을 거친 재무통으로, 이 부회장이 믿고 곳간 열쇠를 맡길 수 있다.
예고됐던 대로 삼성전자는 이날 사업부문 대표이사 3인을 모두 교체하며 파격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반도체의 DS부문장에 김기남 반도체총괄 사장(59), 가전의 CE부문장에 김현석 VD사업부 사장(56), 모바일의 IM부문장에 고동진 무선사업부 사장(56)이 각각 임명됐다. 깜짝 발탁은 없었지만 기존의 사업 담당 연속성은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또 삼성전자의 사업부문장이 모두 50대로 젊어지면서 역동성을 더한다. 사업부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젊은 사장과 부사장들이 자동 승격될 것으로 보인다.
김기남 사장의 보좌 역할엔 진교영 메모리사업부장, 강인엽 시스템LSI 사업부장, 정은승 파운드리사업부장이 거론된다. 김 사장이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도 겸임할지, 새 인물이 등장할지도 관심사다. 김현석 사장의 뒤를 이어서는 김문수 VD사업부 영상전략마케팅팀장 부사장과 이원찬 VD사업부 서비스전략팀장 부사장이 물망에 오르내린다. 무선사업부장에는 이인종 무선사업부 개발 1실장(부사장)과 노태문 2실장(부사장)이 후보군에 속한다. 실무 부서의 중요도에 따라 사업 전문성이 인사 원칙으로 우선 고려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내 사장단 대부분이 교체되며 전폭적인 물갈이가 이뤄지는 양상이다. 사장단 인사와 임원급 인사가 거의 동시에 진행될 공산이 커 보인다. 지난해 연말 인사를 건너뛴 삼성은 지난 5월 계열사 임원 인사를 단행해 급한 적체를 풀었지만 수장을 따라서 전면교체가 불가피하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주 안에 무조건 인사를 끝낸다는 방침”이라며 “부문장 3인을 필두로 수뇌부가 전면 교체되면서 내부적으로 인사 칼바람을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부회장의 용인술이 사실상 처음 드러난 이번 인사는 무엇보다 ‘세대교체’에 방점이 찍혔다. 조직을 쇄신해 활력을 주는 동시에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 배경에 대해 권 부회장에 이어 윤부근·신종균 사장도 각각 CE부문장과 IM부문장 사퇴 의사를 밝혔다며, 더 이상 후임 선정이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이사회 이사와 대표이사직도 임기를 1년 단축해 내년 3월까지만 수행하기로 했다. 사상 최대 실적 행보를 이어가는 삼성전자가 사업별 수장을 모두 교체한 것은 시장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줄 전망이다. 다만, 3인의 CEO체제를 유지하며 조직개편에 따른 파장은 최소화했다. 삼성전자 외 다른 계열사 사장단 인사도 조직안정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