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금융권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친 노동정책 기조가 강화되면서 사외이사 추천 등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기회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금융노조는 정관 변경 등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사정당국에 고소·고발도 검토하면서 금융수장들의 행보에 제동을 거는 모습이다.
노조가 노동이사제·검찰 고소 등을 통해 금융권 수장의 목줄을 죄고 나섰다. 사진/백아란기자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EB하나은행을 비롯한
하나금융지주(086790) 산하 3개 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는 이달중으로 서울중앙지검에 하나금융회장과 KEB하나은행장을 은행법 위반 등으로 고발할 계획이다.
하나금융 회장과 은행장이 정유라 특혜 대출과 이상화 전 본부장의 특혜 승진과 관련해 위증 혐의가 있고 은행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는 금융감독원에 김 회장과 함 행장에 대한 제재를 요청했다. 또 경영진에 대한 내부 비위 등을 증거로 금융당국에 별도의 심의를 접수할 방침이다.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는 “회장과 행장은 금융기관의 장으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준수해야 하는 사회적 책무가 막중함에도 정권과 결탁해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며 “향후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명확한 제재를 통해 관리와 감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노조의 이같은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노동계인사 초청 회의에서 ▲산별교섭 복원과 ▲윤종규 KB금융회장의 셀프 연임 ▲KEB하나은행 문제 ▲사회공헌활동 공익법인 설립 등에 대해 관심을 요청한 바 있다.
대외적으로 높아지는 노조의 목소리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제왕적 조직을 바꾸고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는 등 경영 투명성 제고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화된 노조가 회사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치권과 수사당국을 끌어 오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경영 관여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경우 최근 보고서를 통해
KB금융(105560)지주의 하승수 변호사 사외이사 선임과 대표이사의 이사회 참여 배제를 위한 정관 변경 등 2개 안건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에 ISS가 반대한 의견은 노동조합이 주주 제안한 안건으로, KB금융은 오는 20일 주주총회에서 윤종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1호 안건)과 허인 국민은행장 내정자의 기타상무이사 선임 안건(2호), 하승수 변호사 사외이사 선임(3호), 정관 변경의 건(4호)을 의결한다.
ISS는 “계열사에 대한 대표이사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것은 주주가치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며 “하 변호사의 비영리단체 활동 이력 또한 금융지주사 이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불명확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맞서 회장이 사외이사를 임명하고, 사외이사가 회장선임을 결정하는 꼬리 물기 식의 기형적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반박도 나온다.
박홍배 KB국민은행지부 노조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 대토론회’에 참석해 “금융회사는 회장의 사유물이 아니다”라며 “윤 회장이 뽑은 사외이사가 다시 윤 회장을 뽑는 ‘셀프연임’은 반대한다”고 역설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 또한 “오늘날 금융지주사는 자회사의 건전한 경영을 도모한다는 당초 목적과 달리 권력다툼 내지는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오히려 금융회사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라응찬 전
신한지주(055550)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간의 다툼, 이건호 국민은행장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의 주전산기 교체사태 등을 꼽으며 “현행 지주회장의 권한과 책임, 선출방식 등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지주사의 자회사에 대한 경영참여 절차와 과정을 명문화하고, 이를 견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정치권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기관은 신용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일반 기업보다 더 큰 공공성과 책임성이 요구된다”며 “이를 위해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동이사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이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금융기관의 공공성과 책임성 제고를 위해 도입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그동안 낙하산 인사와 관치 금융 등 금융지주회사 체계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다”며 “직원대표와 공익대표, 주주대표 등 이해당사자가 직접 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조성함으로써 보다 민주적인 의사결정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편 금융당국에서는 지배구조법 개정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규범)를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이형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은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이의가 없지만 방법론에 있어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큰 틀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하고 여기서 나오는 목소리를 금융당국 또한 듣겠다”고 언급했다.
근로자 이사제도와 관련해선 “단체교섭에 있어 근로자의 역할과 분리해야 한다”며 “지주회장의 무소불위를 견제할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선 공감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책임성을 어떻게 강화할지에 대한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