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7박8일간 동남아 순방 중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13일 문 대통령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 당시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일부 방송기자들과 청와대 관계자간 언쟁이 벌어졌다. 국민소통수석실이 사전 예고 없이 청와대 페이스북을 통해 내보낸 생방송 때문이었다.
KBS 아나운서 출신인 고민정 부대변인은 회담이 열리는 호텔에서 문 대통령의 순방 일정과 현장 분위기 등을 전했다. 보안지역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부 관계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장 기자들은 “청와대가 언론 역할도 하나. 취재 역차별”이라고 항의했다. 청와대 측은 “경쟁 매체가 아니다. 콘텐츠를 국민과 언론 모두에게 제공하는 역할”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자체 콘텐츠 제작 배포시 반드시 사전 공지를 하겠다”고 약속해 사태를 수습했다.
이번 일은 청와대와 언론 간 소통 부족으로 생긴 일종의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번 일의 밑바닥에는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려는 청와대와 미처 적응하지 못한 기존 언론간 ‘인식의 갭’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기존의 TV나 신문, 잡지 등 매스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기성언론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누구라도 페이스북 생방송을 하고, 트위터 속보를 전송하고, 카카오톡 '지라시'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하는 문재인정부는 이런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구중궁궐 청와대의 문을 대중에 활짝 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평일 오전 11시50분마다 청와대 소식을 전하는 생방송을 진행한다. 유튜브에서는 각부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이 국정상황을 국민에게 브리핑한다. 문 대통령 내외의 소소한 일상 모습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달된다.
물론 청와대의 입맛에 맞고, 홍보기능에 치중한 콘텐츠만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각종 정보가 범람해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지금 시대에,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청와대의 적극적인 소통 노력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청와대처럼 언론도 변해야 한다. 정보생산 플랫폼으로 안주해서는 미래가 없다. 플랫폼 역할은 이미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에 넘어갔다. 결국 가치의 규정과 창출이다. 미래 언론은 범람하는 정보에서 뭐가 진실인지 알려주는 '워치독' 역할을 해야한다. 또 정보를 정리하고 거기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기성 언론을 위협하는 청와대의 콘텐츠 역시 미래 언론에게는 범람하는 정보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이성휘 정경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