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국내에서 30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성공적인 대회 운영이라는 숙제 외에 개최국으로써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하는 과제가 있다. 무엇보다 올림픽에서 몇 차례 겪었던 판정 시비와 부당한 징계에 대응할 스포츠 중재에 대한 중요성이 늘었다. 스포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더는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간 쇼트트랙의 김동성은 지난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안톤 오노(미국)의 '할리우드 액션'에 다 잡았던 금메달을 놓쳤고 축구의 박종우(에미리트 클럽)는 2012 런던 하계올림픽에서 '독도 세리머니'를 펼치다가 동메달 박탈 위기에 처했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달 7일 '제2의 김동성' 출현을 막기 위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를 도와 평창올림픽 스포츠중재변호사단으로 활약할 35명에 대한 임명식을 열었다. 최진녕 법무법인 이경 변호사는 그중 하나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제재결정위원으로 활약한 경험이 있는 최 변호사를 만나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떠오르는 스포츠 중재 등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이번처럼 대규모 법률가 지원단이 구성된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대한변호사협회 스포츠중재변호인단에 선발된 사람 중에서 어떤 전문가들이 있나.
외국 유학파이거나 대형 로펌에 소속된 분들이 대거 포함됐다. 실제로 외국인 변호사 두 분이 명단에 드는 등 모두 영어 소통이 원활한 분들이다. 또 중재 업무 경험이 있는 분은 물론 국제 중재 업무를 다양하게 하는 분들이 포함된 것으로 안다. 한국야구위원회에 있던 분도 명단에 있다고 들었다.
올림픽 기간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평창에 특별 임시 본부와 반도핑 본부를 운영하고 스포츠중재변호사단은 CAS 업무를 도와 중재 업무를 맡을 예정인 걸로 안다. 스포츠중재변호사단 업무 분담 등은 어떻게 이뤄지나.
이번에 정위원 20명과 예비위원 15명이 선발됐는데 올림픽 기간 각 정위원 5인과 예비위원 4인씩 총 4조로 나눠 주간 당번제 형식으로 운영된다. 올림픽 때 분쟁이 발생하면 대한변협에서 당번인 정위원들에게 참여 의사를 문의하게 되고 정위원 중 해당자가 없으면 예비위원에게 연락한다. 이후 변호사는 즉시 평창으로 이동해 법률자문업무와 변호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올림픽 기간 중 4~5건 정도의 중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올림픽에서 발생하는 도핑, 선수자격, 판정시비 등에 대해 중재 활동을 하게 됐다. 중재 활동의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고 효력은 어느 정도이며, 각국의 사법부 판단과 관계는 어떻나.
이번 변호인단은 조정이 아닌 중재 업무를 맡는다. CAS 중재 규정을 보면 반드시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돼 있다. 하지만 CAS에서 '이렇게 하겠다'고 결정하면 거의 그 결과를 각 스포츠 협회들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IOC가 CAS에 스포츠중재 부분을 위임했기에 CAS는 중재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IOC에서도 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협회도 결국 IOC 밑에 있는 집단이다. 기존 제 경험을 살려 도핑 문제에 대해 다루는 반도핑 본부 업무를 도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국내 선수의 금지약물 사용이 적발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치료목적 사용면책을 적용할 수 있느냐다. 선수가 약물을 하게 된 경위를 따져봤을 때 인터넷에서 몰래 사 먹었느냐 아니면 지병이 있어서 사전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했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이후 사용 면책을 받아서 선수의 기록과 메달을 유지하는 게 사명이다. 과거 벤 존슨(미국)의 금메달이 박탈된 것도 KADA에서 IOC 위임을 받아 한 것인데 이번에도 KADA가 맡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도핑 이외에 선수자격이나 판정시비 문제는 특별 임시 본부에서 맡을 것으로 보인다.
2012 런던 하계올림픽 당시 독도 세리머니로 동메달을 박탈당할 뻔한 축구의 박종우(에미리트 클럽)나 3차례 소재지 보고 기피 혐의로 국제배드민턴연맹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배드민턴의 이용대(요넥스) 등은 한 국내 로펌의 중재 끝에 징계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처럼 스포츠 중재가 매우 중요해지고 있는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미국처럼 스포츠산업이 발전한 곳이 스포츠 중재도 발전할 수밖에 없다. 국제형사재판소나 구유고전범재판소 등처럼 CAS 중재단에 들어가는 국내 법조인들이 나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내에서 개최되는 평창 올림픽은 국내 스포츠 중재 발전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올림픽에서 경험을 쌓으면 외국에서도 국내 변호사를 중재인이나 변호인으로 데려갈 수 있다. 스포츠가 산업화하면서 돈이 많이 모이고 따라서 분쟁이 많아진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변호사들이 필요하다. 우리도 프로스포츠 덩치가 커지는 과정이다.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경우 변호사들의 스포츠 에이전트 진출을 돕는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변호사가 스포츠 에이전트로 나아가기엔 국내 스포츠 시장 자체가 미국보다 너무 작다. 다만 블루오션을 개척한다는 의미는 있다. 아직 태동단계다. 지금은 어렵지만, 선수와 구단 사이에서 법률가로 일하며 차츰 새로운 법률 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다. 국내 변호사들도 국제기구나 스포츠 중재 등에 도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달 7일 대한변호사협회 대강당에서 평창올림픽 스포츠중재변호사단 임명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화이팅하고 있다. 사진/대한변협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 5년간 활동했는데 당시 어떤 업무를 담당했나.
KADA 제재결정위원으로 세계반도핑기구(WADA) 규정을 준수하는 KADA 안에 있는 도핑제재결정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제재결정위원회에는 변호사 2명,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대한장애인체육회 사무총장, 체육계 전문가 등이 있다. 도핑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에 대해 청문회를 연다. 왜 도핑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는지 해명할 기회를 준다. WADA 기준에 맞춰 외국 선례 등을 보고 약물을 한 선수들의 징계 수준을 따진다. 국가 대표 선발전과 전국체전은 반드시 도핑테스트를 한다. 여기서 꼭 도핑에 걸리는 선수들을 보면 역도, 수영, 보디빌딩이 많다. 메달이 박탈돼도 은퇴 후 교습이라도 할라고 하면 자신을 메달리스트로 홍보할 수 있으니 상관 안 하는 것이다.
국내 스포츠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지만, 약물에 대한 인식은 변방에 머물고 있다. 최근 수영의 박태환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등에서 꾸준히 도핑 적발 사례가 나와 문제가 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엘리트 스포츠 위주이고 금메달 지상주의가 만연해 선수가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선수가 약물에 손을 댔을 때 안 걸리면 문제가 없지만, 걸리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스테로이드를 하면 어린 선수들이 근육이 파괴되거나 성장이 안 되는 등 매우 많은 부작용이 나온다. 지나친 결과지상주의는 올림픽 정신에도 벗어난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약물이 어린 선수들의 생명을 단축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체육계 자체가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중하니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한다. 그래도 이전보다 국내 선수들의 경우 도핑에 관한 대비나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 정부에서 사전 예방책으로 의무 교육을 하고 있다.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과 코치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러시아는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국가 자체의 올림픽 출전이 금지됐다. 어떻게 보나.
개인자격 출전 금지도 거론 됐었는데, 국가 차원에서 도핑이 벌어졌다고 해도 4년이라는 시간을 준비한 선량한 선수들까지 평창에 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국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결국 선수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지나치게 제재의 범위를 넓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다. 약물 복용이 적발된 선수가 이후 진지하게 반성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약물 없이 좋은 성적을 낸 게 입증된다면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약물 전력이 있다고 해서 국가 전체를 불참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연대 책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에 개인자격 출전을 허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림픽은 거대 비즈니스 이벤트이기도 하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이고 기업이나 상인들에게 대목으로 인식되는 만큼 경제적 다툼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업들 입장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게 있나.
스폰서 기업의 경우 로고 등이 올림픽 중계화면 등에 드러나야 하는데 제대로 안 됐을 때 그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선수 초상권 문제도 발생할 수 있지만, 선수의 경우 대회 출전 이전에 초상권 문제에 동의하게 된다. 이외에 스폰서 광고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떤 부스를 세우고 노출하느냐가 문제일 텐데 현실적으로 마케팅 업체들이 해야 하는 부분이다. 다만 공식 스폰서와 로컬 스폰서가 있는데 국내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이기에 국내 기업에 할당되는 후원량이 있다. 하지만 IOC와 계약이기에 국내보다 분쟁의 준거법을 따졌을 때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법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기업이 스폰서를 한다고 해도 이에 따라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 외국에서 재판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국내 변호사가 접근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이런 부분을 해결해 국내 활동이 가능하도록 힘써야 한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국내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이다. 대규모 법률가 지원도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스포츠 중재나 스포츠 발전을 위해 재야 법조계에서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