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실명제 D-1…신규 투자 당분간 어려워·혼란 불가피

금융당국, 자본세탁방지 카드…중소 거래소·시중은행, '벙어리 냉가슴'

입력 : 2018-01-29 오후 2:27:06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가상화폐 실명제가 30일 도입되지만 신규투자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이 자본 세탁방지 카드를 꺼내며 계좌개설 자체가 까다로워진데다 은행권에서도 적극적인 마케팅 대신 눈치 보기 양상을 보인데 따른 것이다. 이에 가상화폐 계좌 개설과 투자를 놓고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실명 확인절차 시행을 하루 앞둔 29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가상화폐거래사이트 시세표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국민·KEB하나·농협·기업·광주은행 등 6개 은행은 오는 30일부터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 시스템을 개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거래 은행과 동일한 은행 계좌를 통해서만 입출금을 하게 된다. 가상화폐 취급업소의 거래 은행과 동일한 은행의 계좌를 보유하고 있지 않을 경우엔 출금만 가능하며, 추가 입금은 할 수 없다.
 
즉 가상화폐 거래소가 신한은행을 취급한다면 투자자 또한 신한은행 계좌를 통해서만 입출금이 가능한 것이다. 현재 업비트는 기업은행과 계약을 맺었으며 빗썸은 신한, 농협은행(농축협 계좌 불가)과 코인원과 코빗은 각각 농협은행, 신한은행을 이용하고 있다.
 
해당 은행 계좌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면 추가로 계좌를 개설하지 않아도 되며, 거래소의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 은행 계좌를 등록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실명 확인이 완료된 계좌주 정보와 거래자 정보가 일치해야 한다.
 
다만 신규투자는 제한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소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계좌 신규 개설을 허용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데다 금융거래 목적 확인절차도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거래 목적을 증빙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주부나 학생, 취업준비생 등의 경우 통장 개설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계좌를 새롭게 개설하려면 급여나 공과금 이체, 신용카드 결제 등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내야 하는 탓이다.
 
모바일을 활용한 비대면 계좌 개설(금융한도 계좌)은 가능하지만 금융한도가 창구에서는 100만원, 인터넷뱅킹에서는 30만원까지만 허용된다는 점에서 제약이 가해진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자금세탁 의심거래에 대한 보고의무 강화’ 등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과 은행 현장점검을 시행하며 은행권에 ‘무언의 압박’도 가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지난해 코인원에 가상계좌를 발급했던 산업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실명확인 시스템도 구축하지 않았다.
 
KEB하나·국민·광주은행의 경우 입출금계정 시스템만 도입할 뿐 가상화폐 거래소와 계약은 당분간 하지 않을 계획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작년 7월 빗썸과 거래를 해지한 후에 여타 거래소와의 계약을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며 “거래 실명제 시스템은 구축하되 (서비스)시행 시기는 시장 상황을 본 후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리은행(000030)은 2월 중순 전산시스템 개편을 완료한 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말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계약을 모두 해지한 상태”라며 “현재 전산시스템 개편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해) 뚜렷한 계획이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밖에 신한·농협·기업은행은 기존 가상계좌 고객을 대상에 한해 우선 거래 실명 서비스를 제공키로 했다.
 
한편 정부의 규제로 은행과 가상화폐 거래소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은행권 가상화폐 거래소 관련 수수료 수입이 22억2100만원에 달하지만, 새로운 먹거리로 삼기엔 정부 방침과 규제 방향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가상화폐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며 중소 거래소는 계좌 발급 거래 자체가 미진한 상태다.
한 중소 거래소 관계자는 “신규 계좌 거래를 제공하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벌집계좌 밖에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은행에서도 계좌 거래를 부담스러워 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신규 거래소에 대한 계약은 아직 계획에 없다”면서 “실명제가 시행되면 기존 가상화폐 거래자들의 계좌 개설 요청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기존 거래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지원한 후 신규 허용여부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은행 관계자 역시 “기존 계좌를 사용한 고객을 대상으로 실명제 서비스를 우선 제공할 것”이라면서 “신규 고객 허용여부는 추이를 보고 결정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어 “(계좌를 제한한 것은)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라며 “정확히 가상화폐 거래용이라는 명시는 없지만, 신규 계좌 개설과 고객 유입은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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