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서울 여성 10명 중 9명이 데이트폭력을 당한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일부는 가해 상대방과 결혼해 가정폭력까지 경험했다.
서울시는 지자체 최초로 서울 거주 여성 2000명에게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했다고 30일 밝혔다. 조사 방식은 온라인이며 대상은 데이트 경험이 있으면서 서울에 1년 이상 거주한 20~60세 여성이다. 설문 결과 여성의 88.5%인 1770명은 데이트폭력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가해 남성이 폭력을 처음 시작한 시기는 대체로 사귄 지 1년 이내였다.
가장 많은 응답자가 당한 폭력 유형은 '행동통제'로 1632명이었다. 누구와 있는지 항상 확인하거나, 옷차림과 동아리 활동을 제한하는 등 간섭을 받았다. 언어·정서·경제적 폭력이 1224명으로 뒤를 이었다. 욕을 하거나 때리겠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극단적으로는 살해 협박까지 당했다는 답변이다.
1095명이 겪은 성적 폭력은 여자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가슴·엉덩이·성기 혹은 나머지 신체 부위를 만지거나 성관계 내지 나체 촬영을 강요하는 행태 등이다. 응답자 중 783명은 신체 폭력을 당했으며 이 중 35.5%인 278명은 병원까지 갔다. 팔목 등 신체 부위를 힘껏 잡힌 상대적으로 경한 피해부터 손이나 도구로 당한 폭력까지 세부 유형은 다양했다.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반응은 부정 일변도로 완전히 기울기보다는, 별 생각이 없거나 사랑을 느낀다는 등 복합적이었다. 행동통제와 성적 폭력의 경우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가 각각 36.7%, 30.3%로 가장 많았다. 행동통제의 경우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는 응답도 30.5%였다. 반면 언어·정서·경제적 폭력과 신체적 폭력은 ‘헤어지고 싶었다’가 각기 32%, 33.8%로 파악됐고 ‘무기력 또는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졌다’는 32.3%, 30.7%로 나타났다.
피해 이후 본인이 취한 조치를 묻는 질문에 4개 폭력 유형 모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가 과반을 차지했다. 신체적 폭력의 경우 경찰 신고가 다른 유형보다는 높았지만 9.1%에 그쳤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신고나 고소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가 많았다.
피해자가 전문상담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도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심각성을 느끼는 경우에도 주변에 알려지기 싫거나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개인적인 판단이 기관 이용을 가로막았다.
데이트폭력 피해자 상당수는 가해 상대방과 결혼했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기혼자 833명 중 742명은 데이트폭력 경험이 있었다. 피해자 중 46.4%는 가해자와 결혼했으며, 이 중 17.4%는 가정폭력까지 이어졌다.
데이트폭력 원인으로는 피해 여성 58.7%가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을 꼽았고 ‘여성혐오 분위기 확산’이 11.9%로 뒤를 이었다. 여성혐오 응답은 20대가 15.9%로 가장 많았으며 연령이 높아질수록 줄어들었다.
서울시의 데이트폭력 설문조사 중 '성적 폭력' 항목. 자료/서울시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