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GS칼텍스가 2조원대를 투자해 전남 여수 제2공장 인근에 에틸렌과 폴리에틸렌 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설비를 짓는다. 주력인 정유사업이 성장한계에 직면하자 수직계열화를 통해 수익성을 꾀하려는 전략이다.
앞서 나프타분해센터(NCC) 사업에 진출한 SK이노베이션에 이어 GS칼텍스까지 관련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정유와 석유화학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특히 GS칼텍스는 이번 사업 진출로 원료 구매처이자 한때 범 LG가로 엮여있던 LG화학과 여수산단에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할 전망이다.
GS칼텍스는 전남 여수 제2공장 인근 약 43만제곱미터 부지에 2조원대 금액을 투자해 연간 에틸렌 70만톤, 폴리에틸렌 50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올레핀 생산시설(MFC·Mixed Feed Cracker)을 짓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올해 설계작업을 시작해 오는 2020년 상업 가동한다는 목표다.
MFC는 석유화학의 주요 원료인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설비다. 주로 나프타를 원료로 쓰는 석유화학기업의 NCC와 달리 정유공정에서 나오는 액화석유가스(LPG), 부생가스 등 다양한 유분을 원료로 투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GS칼텍스 측은 설명했다.
MFC는 미국 다우케미칼과 프랑스 토탈 등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들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과 현지에서 합작사업을 할 때 채택하는 설비다. MFC는 값싼 원유 부산물이나 잉여 원료를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점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생산수율이 투입 원료에 따라 제각각이기 때문에 원료 조달에서 경제성을 확보한 중동지역에서만 선호하는 설비라는 게 석유화학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사실상 NCC 사업진출로 받아들이고 있다. 투입하는 원료의 수가 늘어나는 것 외에 생산 공정이나 품목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서다. 석유화학기업은 원유에서 뽑아 낸 나프타를 정유사에서 구매해 NCC에 투입하고, 여기서 나온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활용해 폴리에틸렌 등 플라스틱 소재를 만든다. NCC 역시 나프타만 쓰지 않고, 여름철에는 가격이 떨어지는 LPG를 혼합한다.
GS칼텍스가 화학사업 영역을 확장키로 한 것은 정유 사업만으론 지속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유업은 세계경기와 국제정세, 환율 등 대외변수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큰 반면 석유화학사업은 제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GS칼텍스의 석유화학사업 강화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비정유 부문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업계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GS칼텍스는 2012년 제4고도화시설에 1조2000억원을 투자한 뒤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었다. 지난 2013년 합성섬유와 페트(PET)병 중간원료인 파라자일렌(PX) 공장 증설을 추진했으나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개정안이 연말에 가까스로 의결되고, 이듬해 PX 업황이 악화되면서 투자시기를 놓쳤다.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은 외촉법이 부결되면 투자비 4800억원을 추가로 떠안아야 하는 부담 속에서 증설을 강행해 최근 수년간 PX 사업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GS칼텍스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여수산업단지 석유화학기업과 껄끄러운 관계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GS칼텍스에서 나프타를 조달해오던 여천NCC와 LG화학, 롯데케미칼 등은 수입물량을 늘려야 한다. 특히 LG화학은 범 LG가 우산 아래에 있는 터라, GS그룹 수뇌부의 고민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GS칼텍스가 NCC와 겹치는 사업을 굳이 MFC로 표현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