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민 기자]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결국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 카드를 꺼내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군산공장의 가동률 저하가 표면적인 이유지만, 가동률 저하는 지난 3년간 지속된 문제다. 결국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시작으로 GM의 한국시장 철수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30만개 일자리를 볼모로 우리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배리 앵글 GM 해외사업부 사장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우리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지엠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GM이 우리 정부에 유상증자 참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고, 유상증자 규모만 3조원이 넘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산업은행이 한국지엠 지분 17.02%를 갖고 있기 때문에 유상증자에 참여하게 되면 지분율에 맞게 5100억원을 출자해야 된다. 여기서 세제 혜택을 포함해 생산기지를 보유한 다른 나라에 비해 좋은 조건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까지 우리 정부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시점이 묘하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날 한 언론사 포럼에서 GM이 한국지엠의 경영 정상화와 관련해 전달한 요구사항에 대해 “GM이 한국에서의 중장기 경영개선 및 투자계획을 먼저 제시해야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무 장관이 한국지엠 재정 지원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자 우리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곧 바로 군산공장 폐쇄 카드를 꺼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 정부가 군산공장 폐쇄 결정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일자리와 지역경제 때문이다. GM이 결국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를 건든 셈이다.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직원은 현재 2000여명 수준이다.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포함하면 수만명의 일자리가 당장 사라지게 된다. 특히 GM이 한국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할 경우 4개 공장의 한국지엠 직원 1만500여명 뿐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까지 약 30만명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
이번 결정은 우리 정부나 산업은행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10월 한국지엠의 주요 정책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비토권’을 상실한 상태다.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뿐 아니라 부평공장까지 폐쇄를 결정해도 우리는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GM이 그동안 보여준 행태다. GM은 지금까지 2대주주인 산업은행에 회계장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한국지엠의 손실 규모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주주감사권을 행사해 116개 자료를 요구했지만, GM은 단지 6개만 제출했다. 여기에 한국지엠이 GM으로부터 가져온 차입금에 대한 높은 이자율도 도마위에 오른 상태다. 한국지엠은 지난 2013년부터 지엠홀딩스로부터 높은 이자율의 원화를 차입해 총 440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지엠이 다른 완성차보다 매출원가율이 유난히 높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지엠의 매출원가율은 2015년 96.5%, 2016년 93.6%에 달한다. 같은 기간 같은 기간 현대차의 매출원가율 76.7%, 기아차 78.3%, 쌍용차 83.7%, 르노삼성차 80.1% 와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매출원가율이 높다는 것은 한국지엠이 그동안 부품 등에 비용을 많이 지불했다는 말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지엠이 GM 본사로부터 높은 부품 가격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원가율이 높아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GM에 지불하는 비싼 용역비가 문제로 거론되기도 했다.
GM이 그동안 해외 사업장에서 진행한 사업 철수도 살펴봐야할 대목이다. GM은 호주 정부로부터 2001년부터 2012년까지 1조7000억원이 넘는 지원금을 받으면서 호주 공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2013년 지원금이 끊기자 곧바로 철수를 결정했다. 지원금 없이는 자체적인 경쟁력이 없는 호주 공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지원이 이뤄진 이후에도 한국지엠 자체 경쟁력이 없다고 GM 본사가 판단한다면 철수를 막을 방법이 없다.
우리 정부가 한국지엠에 자금을 지원한다고 해서 한국지엠의 경영이 정상화 될지도 미지수다. 한국지엠은 지난 2017년 잠정 적자 6000억원을 포함해 최근 4년간 2조6000억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상태라는 것이다. 유상증자를 통해 3조원을 지원하더라도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유상증자에 신경 쓰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GM이 우리 정부에 보여준 것”이라며 “문제는 유상증자를 했을 때 한국지엠이 과연 살아날 것인가의 문제다. 한국지엠의 노력이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이 13일 군산공장 폐쇄를 공식 발표한 가운데 군산공장에서 근무를 마친 직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