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문지훈 기자] 이대훈 농협은행장이 취임 후 첫 해외출장 장소로 미국을 택했다. 작년 초 농협은행 미국 뉴욕지점이 현지 금융당국으로부터 대규모 과태료를 부과받은 것과 관련해 직접 사안을 챙기기 위해서다.
특히, 국내 금융당국이 자금세탁 문제를 중대한 제재사항으로 보고 있는 만큼 이번 해외지점의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의 부실관리 문제가 금융권에서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27일 은행권에 따르면 이 행장은 이날 미국 뉴욕으로 출장을 떠나 다음달 3일 귀국할 예정이다.
국내 은행들이 동남아시아를 주요 해외진출 지역으로 꼽고 있는 데다 모회사인 농협금융지주 역시 해당 지역 진출에 힘을 쏟고 있지만 첫 해외출장 장소로 미국을 택한 것이다.
이 행장이 이같이 결정한 이유는 농협은행이 작년 미국 뉴욕 금융감독청(DFS)으로부터 자금세탁방지 관련 시스템 미흡을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것과 관련해 지원에 나서기 위해서다.
이 행장은 이번 출장 기간 동안 DFS를 비롯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관계자들과 만나 농협은행의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한 준법감시 시스템 개선방안 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작년 12월 뉴욕 DFS로부터 자금세탁방지 관련 준법감시 시스템 미비를 이유로 1100만 달러(약 119억원) 과태료를 부과받은 바 있다. 작년 초 FRB로부터 이와 관련한 시정조치를 받은 뒤 각종 지적사항에 대한 시정 내용을 보고했지만 추가 검사에서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농협은행 미국 뉴욕지점이 부과받은 과태료는 지난 2년 수익과 비슷한 규모다.
이후 농협은행은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한 준법감시 시스템 강화 작업에 나섰다. 작년 말에는 기존 자금세탁방지팀을 자금세탁방지단으로 승격시키고 관련 현지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들을 배치했다. 내부 시스템을 보완하고 전문인력을 채용하라는 등의 시정 조치를 이행하기 위해서다.
특히 금융감독원도 최근 농협은행을 대상으로 자금세탁방지 업무 관련 검사를 실시해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추가 제재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국 당국의 과태료 부과 이후에 농협은행 본점이나 뉴욕지점에 대해 자금세탁방지 업무 관련 검사를 진행했고, 경영개선조치 등 제재 여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금감원은 최근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해 실명이 확인된 가상계좌에 대해서만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하도록 하는 등 은행권의 전반적인 자금세탁방지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불거진 자금세탁방지 관련 준법감시 시스템 문제에 농협은행뿐만 아니라 현지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도 관련 시스템을 정비·강화하는 방식으로 정비에 나섰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024110)의 경우 관련 준법감시 인력을 대폭 충원했으며 국민은행은 외부 컨설팅 기관에 상시 자문을 맡긴 상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한 당국의 우려와 요구사항이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라며 "요구사항을 준수할 수 있도록 정비했지만 내부 검토를 거쳐 관련 시스템을 추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농협은행은 작년 1월부터 FRB에 자금세탁방지 이행 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분기별로 제출하고 있으며 조만간 DFS에도 분기별로 관련 내용에 대해 보고한다. 작년 농협은행에서 직접 FRB에 보고한 사례가 있는 만큼 이 행장이 직접 나서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이 직접 FRB와 DFS에 보고하기보다는 현지 당국 관계자들과 만나 농협은행의 자금세탁방지 준법감시 시스템 개선방안 등에 대해 설명할 것"이라며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해외 영업현장을 방문하는 만큼 관련 사항에 대해 점검하고 직원들도 격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대훈 농협은행장(오른쪽 첫째)이 지난 1월 농협은행 전북영업부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는 모습.사진/농협은행
이종용·문지훈 기자 jhm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