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일감몰아주기 의혹과 수백억대 횡령혐의를 받고 있는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내려놨지만 뒷말이 무성하다. 검찰 수사와 여론을 의식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듯 비치지만, 사내이사는 유지하며 '무늬만 사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전 회장과 같은 횡령혐의를 받고 있는 부인 김정수 사장은 각자 대표이사의 한 축을 맡았다.
지난 23일 주주총회를 거쳐 삼양식품은 기존 전인장 대표(회장)의 임기가 만료되고 김정수 사장·정태운 생산본부장 각자 대표체제가 됐다. 최근 검찰이 전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를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수사하자 부담을 느낀데 따른 조치라는 게 안팎의 시각이다.
검찰은 지난달 20일 서울 성북구 삼양식품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이어 최근 전 회장과 김 사장 부부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총수일가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이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린 회사로부터 원료나 포장지, 박스를 공급받는 등 '일감 몰아주기' 혐의(업무상 횡령 등)를 받고 있다.
현재 삼양식품은 '와이더웨익홀딩스'에서 라면스프 원료를, '테라윈프린팅'에서 라면 포장지를, '프루웰'과 '알이알'에서 라면박스를 각각 공급받고 있다. 이들 모두 총수인 전 회장과 부인 김 사장, 회장 측근 등이 대표이사인 회사들이다. 검찰은 이 같은 방식으로 삼양식품 총수일가가 챙긴 액수가 최대 800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각에선 삼양식품이 일부 사업을 분리해 전 회장의 장남 전병우씨 이름으로 세운 '페이퍼 컴퍼니'에 넘기는 수법으로 편법 승계 작업을 해왔다는 의혹도 추가 제기된 상태다.
이번 주총은 총수일가를 둘러싼 의혹과 검찰 조사 등에 따른 경영진의 대책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전 회장은 일련의 의혹들을 외면했다. 주총 행사장에서 주주들에게 검찰수사에 대한 어떠한 입장표명도, 제대로 된 해명도 없었다. 그는 "세계적인 종합식품 기업으로 성장·발전해 나가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벨류체인 관리체계를 확보하겠다"는 의례적 사업계획만 열거했다.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도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일각에선 "아직 검찰 수사단계일 뿐 전 회장 일가의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만큼 경영권 유지에 문제될 게 없다"는 시각도 있다. 반대로 "비위혐의 정황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임에도 주총에서 모른 척은 책임경영을 포기한 것"이란 따가운 시선도 존재한다.
삼양식품의 한 소액주주는 "주주들은 회사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게 상식인데 회사를 앞에서 이끄는 오너일가를 둘러싼 의혹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며 "떳떳하면 제대로 된 해명이라도 하면 될텐데 주주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무책임한 오너경영"이라고 성토했다.
한편 2세경영을 이끌고 있는 전 회장은 2005년 3월 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른 뒤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 전중윤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2010년 3월 삼양식품 회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전 회장 대에서 실적 정체는 길어졌다.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에서 11%대에 머물며 농심, 오뚜기에 이어 3위로 밀려난 지 오래다. 최근 히트 상품으로 떠오른 '불닭볶음면'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총수일가의 잇단 경영 비리의혹으로 또 다시 발목이 잡힐 위기에 놓였다.
전인장 회장(왼쪽)과 삼양식품 본사. 사진/삼양식품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