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공모해 대기업들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과 13개 혐의를 공모하며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최씨보다 중한 형이다.
18개 혐의 중 16개 "유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세윤)는 6일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뇌물) 등 총 18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실형과 함께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를 상당 부분 인정하며 박 전 대통령의 18개 혐의 중 16개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번 선고 이전 박 전 대통령 공범들의 재판에서 이미 유죄로 인정된 혐의 개수와 같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으로 국정질서 혼란이 야기되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됐다. 이러한 책임은 헌법에 명시된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한을 나눠준 피고인과 국정을 농단한 최씨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은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씨에게 속았고 비서관들이 한 일이라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책임을 전가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삼성·롯데 등에 뇌물 요구"
이어 "피고인은 국가 원수이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제대로 쓸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사적 친분이 있던 최씨와 공모해 기업들에 재단 출연을 요구하고 최씨 사익을 위해 대통령 지위를 남용해 기업 경영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공무상 누설해서는 안 되는 청와대 문건을 최씨에게 전달하고 삼성과 롯데 등에 금전적 지원을 요구했다"고 강조했다.
또 "피고인은 공무원의 사직을 강요하며 공무원 체계 근간을 훼손했다. 정부 비판적인 인사들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 배제를 실행에 옮겼고 다수 문화계 종사자들이 불이익을 받았다. 일부 공무원들은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지시가 위법함에도 고통스럽게 따라야 했다"고 지적했다.
"직접 받은 뇌물 없는 점 양형에 고려"
그러면서 "다시는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을 남용해 혼란스럽고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피고인에게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다만 피고인이 직접 받은 뇌물이 없고 롯데가 70억원을 반환한 점, 이전까지 범죄전력이 없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최씨 1심 때와 마찬가지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그룹 현안 해결을 위해 청탁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보고 삼성 관련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제3자 뇌물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 관련 뇌물 혐의 중 나머지 하나인 최씨 딸 정유라씨 승마지원 혐의(단순 뇌물 혐의)는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이외 롯데에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금을받은 혐의(제3자 뇌물수수)·SK에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금을 요구한 혐의(제3자 뇌물요구)는 최씨 1심 때와 같이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 "최종적으로 법·상식 맞는 결과 나오게 할 것"
선고 직후 검찰은 "최종적으로 법과 상식에 맞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국선변호인인 강철구 변호사는 "최선을 다했는데 선고 결과가 좋지 않아 안타깝다.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다른 판단을 할 것으로 믿는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면서 항소 여부 관련해 "어떤 루트로든지 박 전 대통령의 의사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재판은 전국에 TV로 생중계됐으나 피고인인 박 전 대통령은 건강 등의 사유로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며 나오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이 아닌 하급심이 방송 전파를 탄 것은 지난해 7월25일 앞으로 최종심뿐 아니라 하급심인 1·2심에서도 중요사건의 판결 선고를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있게 대법원 규칙이 개정되고 처음이다.
'진박' 위한 불법여론 조사도 재판 중…형량 늘 듯
박 전 대통령은 최씨 등과 공모해 삼성으로부터 정씨의 승마훈련 지원을 요구하고 미르·K스포츠재단 및 영재센터 지원 명목으로 뇌물을 받는 혐의 등으로 지난해 4월17일 구속기소 됐다. 이번 선고는 기소 355일 만에 나온 결과다. 이와 별도로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 등 재판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와 2016년 4·13 총선 당시 이른바 '진박' 인사를 공천·당선시키기 위해 불법 여론조사를 진행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이 부분은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성창호)가 심리를 담당하고 있는데 앞으로 형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2월27일 1심 결심공판에서 "하루빨리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헌법 가치를 재확립하기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질서를 짓밟았다"며 "훼손한 국가 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돌리기 어려운 점, 진지한 반성과 사과 의지가 없는 점,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얻은 이익이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점, 준엄한 사법부 심판을 통해 다시는 이번처럼 비극적 역사가 나오면 안 된다는 점을 위정자에게 보여야 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구속 연장 후 처음으로 열린 80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