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 기숙사와 청년임대주택

입력 : 2018-04-11 오전 6:00:00
지난달 TV프로그램 <하룻밤만 재워줘>에서 남성인 방송인 김종민씨가 영국 옥스퍼드대 재학생 전에스더씨의 기숙사 출입에 난색을 나타내자 오히려 전씨가 의아해했다. 금남·금녀의 영역을 자처하며, 군대 문화를 빙의한 한국 기숙사와 달리 전씨는 한국의 4인 1실보다도 널찍한 1인 1실의 방에서 속박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
 
영국 역시 학자금 대출 제도가 있지만, 한국과 달리 직장을 얻고 소득에 따라 상환기간이 달라지며 소득이 있기 전까지 원금과 이를 상환할 의무가 없다. 일정 소득 이상을 넘어야 갚기 시작하며, 적은 임금상태로 25년이 지난다면 학자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
 
장소를 옮겨 2018년 한국의 성북구 동소문동 한 아파트 앞에는 행복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총신대·홍익대·고려대·동덕여대·한양대 등 등 6곳에서 기숙사 건립이 추진 중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이해 관계 충돌로 민원이 제기되면서 건립이 지연되거나 불투명하다.
 
주민들이 임대수요 감소와 노후 대비, 생존권 등을 주장하는 사이 전국 기숙사 수용률은 21%, 수도권은 16%에 그치고 있다. 서울 안에서 서울시립대가 8%로 가장 낮았으며 이어 동국대(9%), 고려대(10.3%), 숙명여대(11%), 홍익대(11.4%) 등 순으로 기숙사가 부족하다.
 
국토교통부 ‘2016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가구 72.5%는 월세 형태에 거주하고 있다. 청년 1인가구 중 42.4%가 주거빈곤가구로, 전체 1인가구 평균 27.1%에 비해 훨씬 높다.
 
기숙사를 구하지 못한 청춘들은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0만원의 원름도 구하기 힘든 현실 속에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에 시달리거나 하루 2~3시간 넘는 통학길을 감수해야 한다. 부동산시장에서 대학 원룸가는 호재로 평가받아 대학이 가까울수록 좋은 매물로 평가받으며, 전문 원룸업체가 속속 들어서는 것은 아픈 현실이다.
 
대안으로 서울시에서 ‘역세권 2030 청년주택’으로 내놓은 청년임대주택 역시 현실에선 만만치 않다. 2020년까지 8만호를 공급하겠다는 청년임대주택은 영등포구청역 인근, 마포구 창전동, 신림역, 강동구 성내동 등 추진되는 지역마다 인근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주민들은 아파트 가격 폭락, 교통혼잡, 빈민지역 슬럼화, 청소년 우범지역화 등을 주장하며 청년임대주택을 ‘빈민아파트’라고 비하하거나 몸싸움, 집회, 소송 등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착공은 수개월 지연되거나 분위기 악화로 사업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예사다.
 
하지만, 한국주택학회와 SH공사 도시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연구보고서는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오히려 주변 주택가격을 견인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보여주고 있다. 임대주택 반경 250m 이내는 건설 전에 비해 약 8.8%, 500m 이내도 약 7.3% 주택가격 인상을 견인했다.
 
실제 각종 사례를 살펴봐도 임대주택은 기반시설 확충, 지역 노후도 개선, 유동인구 증가, 상권규모 확장, 공공서비스 확대 등으로 이어진다. 당장 서울시의 청년임대주택에도 어린이집, 헬스장, 북까페 등으로 지역과의 공생을 꾀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묵묵부답이다.
 
방송에서 전씨는 “저는 한국 학생들 보면 힘들게 열심히 공부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혹시, 우리 사회, 이웃 주민들은 청년들과의 함께사는 세상이 아니라 ‘각자도생’이 계속되길 바라는 것일까.
 
박용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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