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정부 엇박자가 키운 '삼성 보고서' 논란

입력 : 2018-04-20 오전 6:00:00
지난 2007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3세로 사망 원인은 백혈병이었다. 황 씨의 사망을 계기로 삼성전자의 산업재해 피해자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을 비롯해 폐암, 피부암, 림프종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118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인 '반올림'에 2007년부터 지난 2월까지 제보된 사망자는 80여명이다.
 
황 씨는 사망 이후 7년이 지난 2014년에야 드디어 법원으로부터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그 사이 삼성과의 힘겨운 법적 공방이 이어졌다. 산재를 입증하고 또 인정 받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의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는 것도 이같은 산재 입증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보고서 공개를 두고 정작 관련 부처들은 각기 다른 판단을 내놓고 있어 피해 가족들을 혼란케 하고 있다.
 
작업환경 보고서는 유해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정기적으로 고용부에 제출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내부 작업자들도 열람할 수 있는 것으로 작업공정별 유해요인 분포 실태, 공정별 화학물질 사용 상태, 장소별 유해인자의 측정 위치도 등을 포함하고 있다. 즉 유해 인자에 노출 되는 정도를 확인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 보고서를 통해 영업기밀과 노하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고서 내용이 공개될 경우 삼성의 기술이 공개돼 중국 등 업체들의 추격이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산업부에 보고서를 보내 국가핵심기술 포함 여부 확인을 요청했고, 산업부는 반도체 핵심 기술이 들어있다며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직업병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산재 규명을 위해 작업환경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고서 내용에 영업비밀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없는 만큼 공개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보고서 공개 논란에 대한 결정은 법원의 판단에 맡겨진 상태다. 아쉬운 것은 이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정부 부처 간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경쟁력을 위해 무분별한 정보 공개도 막아야 하지만 직업병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에게는 정보 하나하나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부처간 벽을 허물고 협업을 하는 이유는 결국 국민을 위한 것이다. 이번 보고서 논란을 통해 관련 내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규정이 확립되길 바란다.
 
이해곤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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