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네? 공항이요?”
덜컥, 인천공항을 가게 됐다. 비행기를 타지도 않는데 말이다. 여권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자각이 조금 슬플 뿐이었다.
밴드 솔루션스에게 ‘공항’은 더 없이 특별한 장소다. 멤버들끼리 공유하는 대부분의 추억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일본 섬머소닉을 시작으로 그간 다녀온 곳만 총 15개국. 아프리카만 가면 이제 전 세계에 안 가본 대륙은 없다. 멤버들과 함께 한 추억도 여권에 찍힌 입국 도장만큼 점점 늘어갔다.
“(한솔)처음 밴드끼리 공유하는 ‘공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공항 밖에 떠오르는 곳이 없었어요. 투어를 다니며 느낀 즐거움과 아쉬움.. 여러 감정들이 공항에 함께 존재했던 것 같거든요.”
“(오경)평소에 멤버들끼리 자주 만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그래도 여느 밴드 못지않게 공항에서 느낀 추억이 많아요. 에피소드요? 진짜 많죠. 저는 LA 갔을 때 한 음식점에서 여권을 떨궈서 출발하지 못한 적도 있어요. 저희 넷 안에 그런 조그만 추억들이 모이다 보니 ‘공항’이란 공간을 먼저 제안했던 것 같아요.”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기자
봄 바람이 일렁이던 지난 24일 오후 밴드 솔루션스(보컬: 박솔, 기타: 나루, 베이스:권오경, 드럼: 박한솔)를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만났다. 스트라이프셔츠와 호피무늬 티셔츠, 베레모, 선글라스, 타투. 그들의 음악 만큼이나 청량하고 에너지 넘치는 패션이었다. 인터뷰어나 인터뷰이나 비행기를 타지 않는 신기한 상황이 연출됐지만, 우린 우연히 경유지에서 만난 행인인 것처럼 차분하고도 자유롭게, 그리고 솔직, 담백하게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나루)네 안녕하세요. 2012년 결성돼 ‘신스 팝’, ‘모던 록’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는 밴드 솔루션스입니다. 이름은 초기 멤버였던 저와 솔이가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짓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지었어요. 딱 들었을 때 직관적인 의미가 느껴져서 지었고 후에 팬 분들이 여러 의미를 붙여주신 것 같아요.”
“(오경)예전에 팬 분들이 나루의 ‘루’와 (박솔과 박한솔을 가리키며) 두 사람의 ‘솔’을 합쳐서 의미를 만들어 주신 경우가 있었어요.”
멤버들이 술을 좋아해서 ‘술로션스’라는 별칭도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하니, 멤버들은 깜짝 놀란다. “(오경, 한솔)그런 이름이 있어요? 처음 듣는데 괜찮은데요! 술로션스란 말이 있다니 처음 알았어요” “(나루) 저희가 자주 가는 단골 술집이 있는데 거기서 멤버들 이름으로 트리뷰트 술을 만들어 주셨거든요. 아마 그것 때문에 그런 게 생겨나지 않았나, 싶네요.”
보컬 박솔과 드러머 박한솔.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기자
결성된 지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11~2012년 각자 싱어송라이터 활동을 하던 나루와 솔의 교류가 시작이었다. 비슷한 시기 밴드 랄라스윗 세션을 하던 오경과 밴드 홀로그램필름에서 활동하던 한솔도 세션으로 함께 했다. ‘솔루션스’라는 이름을 걸고 공연을 했고, 2012년 밴드명을 딴 첫 정규 앨범이 나왔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사운즈 오브 더 유니버스(Sounds of the universe)’는 지금도 그들의 ‘대표성’을 대변해주는 곡이다.
“(한솔)공연 때 그 곡은 한 번도 뺀 적이 없던 것 같아요.” “(솔)사운드 자체가 임팩트 있는 느낌도 있고, 저희도 솔루션스의 대표곡이라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곡이에요.” “(나루)솔루션스는 기본적으로 사람들한테 긍정적인, 그렇다고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건 아니지만 ‘에너지’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신이 났으면 좋겠고, 그런 에너지로 위로도 줄 수 있는…저희 음악이 다크하거나 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진취적인 느낌이 강하죠.”
밴드 솔루션스.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 기자
에너제틱한 음악, 패션과 달리 멤버들의 성격은 차분하고 얌전한 편이다. 서로 모여도 쓸 데 없는 말은 최소화하고 할 말만 하는 편이다. “(나루)평소에는 다들 워낙 얌전한 편이죠.” “(오경) 이 중에 음악처럼 에너지 넘치거나 진취적인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한솔)놀 때만 빼고? 주로 술 먹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럴 땐 에너지가 있는 편이지만 평소에는…” 반전의 성격에 놀라 웃음이 터졌지만, 멤버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의 밴드들은 2집에서 ‘소포모어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밴드는 2014년 2집 ‘무브먼츠(MOVEMENTS)’로 신스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새 시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2015년 조금 더 직선적인 록 색깔이 묻어난 EP 앨범 ‘노 프라블럼(No Problem)’을, 지난해까지는 R&B와 힙합으로 장르적 실험도 계속했다. 앞으로 나올 새 앨범들에선 어떤 솔루션스 만의 방향이 나올지, 궁금했다.
“(나루)솔루션스 본연의 느낌을 더 잘 살려보자고 멤버들끼리 얘기하고 있어요. 기타에서 시작되든, 드럼에서 시작되든, 아니면 아예 딥하게 소울풀한 데모 곡도 있고요. 뭐가 됐든 밴드가 밴드로서 표현할 수 있는 색에 대해 고민을 해보려고 해요. 케이팝과 인디가요가 익숙한 음악환경에서 밴드로서 유의미하게 할 수 있는 활동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박한솔) 끊임없이 ‘더 나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밴드 솔루션스.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 기자
대체로 영어 가사의 비중이 많아 영어권 록 음악에 가깝게 들리는 건 이들 음악의 최대 매력으로 꼽힌다. 2014년 일본을 시작으로 유럽 6개 도시 투어, 2015년 북미 최대 음악페스티벌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그 외에 멕시코, 대만, 홍콩 등 총 15개국을 돌며 공연을 했다. ‘한국 밴드’로서 해외 무대에 선다는 건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루)생각보다 저희 노래를 이미 다 알고 따라 불러주셔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주로 온라인 채널로 접하셨던 것 같아요.” “(한솔)소규모 클럽공연장이라 규모가 크지 않긴 했지만, 다 재밌게 즐기고, 굉장히 자유롭게 놀던 모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남의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즐기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솔)외국이든, 한국이든 어쨌든 공연이 즐거운 느낌이라는 게 저희에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공연 중간, 중간 미국 유명 프로듀서와의 협업, 각 세계 밴드들과의 교류는 이들에게 값진 경험도 되고 있다. “(나루)2015년에는 퍼렐 윌리엄스, 제이 지 등의 프로듀서를 담당했던 지미 더글러스와 ‘러브 유 디어(Love you dear)’ 공동작업을 했어요. 당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거리낌 없이 알려주며 신나는 모습을 보고 놀랐던 경험이 있어요. 또 긍정적인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셔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한솔)날씨도 좋았고, 개방적이었고, 자유로웠죠!”
“(오경)올해 3월에는 일본, 대만, 홍콩 밴드들과 합동 공연도 했는데, 일본의 전설적인 밴드 엘르가든 출신인 호소미 다케시와 함께 공연을 하면서 참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에 대한 에티튜드 뿐 아니라 스텝을 대하는 자세도 참 멋졌던 것 같아요.”
밴드 솔루션스.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 기자
밴드는 다음달 5월30일부터 6월3일까지 열리는 스페인 세계 최대 음악 페스티벌 ‘프리마베라’의 쇼케이스 행사에도 초청됐다. “(나루)외국은 또 국내와 성향이 다른 것 같아요. 딥한 록, 스트레이트한 느낌을 더 좋아하시는 데 그런 점을 생각하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인사말도 익히고 가는 게 좋겠죠.” “(한솔)뭐.. 하던 대로!”
솔루션스의 음악을 여행지에 빗대달라는 마지막 질문에는 그간의 질문 때보다 빠른 반응이 나온다. “(오경)오, 여행지에 빗대는 거 좋은 것 같은데요..” “(나루)마이애미 하고 싶다!” “(한솔)LA가 낫지 않아?” “(솔)LA든, 마이애미든 여행을 갈 때 꼭 듣고 싶은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음악만 듣고도 본인이 좋아하는 장소를 떠올릴 수 있는.. 아니면 가면서 듣든.. 그렇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 없을 것 같아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