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다.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가누기 힘든 몸을 이끌고 법원 경위 부축 아래 힘겹게 법정 방청석에 앉았다. 구속된 한 20대 남성 피고인에 대해 재판부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하자 남성은 눈물을 흘리며 퇴정했다. 그런데 재판을 지켜보던 이 여성이 "아이고"를 연발하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위는 여성을 바닥에 눕힌 뒤 119를 불렀다. 여성은 겨우 법정 밖으로 나가며 "어떻게 판결이 이럴 수 있느냐"며 통곡했다. 남성의 어머니인 듯한 여성은 아들 판결에 속이 상한 듯했다.
지난해에는 동창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모 검사 공판에서 타이핑 도중 "어디 기자예요?"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기자를 보던 한 할머니와 마주했다. 옆에 있던 교도관이 "어머니, 그러시면 안 돼요"라고 제지하고 나서야 바로 피고인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았다. 행여 기자의 타자가 곧 아들의 주홍글씨라도 될까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읽혔다.
지난달 30일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재판부가 인천에서 8살 여자 초등학생을 유괴·살해한 뒤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해 나눠 가진 혐의를 받는 김모양과 박모씨에 대해 판결을 선고하는 과정에서 한 여성이 계속 한숨을 내쉬거나 훌쩍였다. 아마도 피고인의 어머니로 보였는데 선고가 끝나자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오히려 담담한 피고인과 대조를 이뤘다.
법원을 출입하면서 이전에는 알 수 없던 '재판 안 가족'을 본다. 피고인에게도 가족이 있고 이들은 손가락질받는 자식이나 형제 안위를 걱정한다. 가족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개중에는 정말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판사는 객관적 사실과 증거로 유무죄를 판단할 뿐이다. 적어도 유죄가 인정됐다면 죗값을 치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기소된 피고인 몫이다. 가족 역시 힘들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 죄 없이 범죄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에게도 가족이 있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 가족들은 딸을 다시는 못 만나는 고통을 매일 마주하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며 피고인들을 질타했다. 이처럼 가해자 가족보다 피해자 가족이 느끼는 고통의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도 없다. 피해자 가족이 공판을 지켜봤다면 어땠을까. 판결이야 어찌 되든 아무리 겉으로 표현해도 숨을 거둔 피해자가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에 먼저 좌절하지는 않았을까 씁쓸해진다.
김광연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