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내안의 괴물을 정면으로 마주보라

입력 : 2018-05-04 오전 8:00:00
10년도 더 지난, 다른 매체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후배 기자들의 기사를 데스킹하는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 데스킹이라는 것은 기사를 내느냐 마느냐의 권한까지를 의미하지만, 그보다는 기사의 ‘품질’을 높일 수 있도록 기사 쓰기를 가르쳤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애초 기자가 기획했던 아이템이 제대로 취재돼 기사구성에 필요한 내용이 모두 포함됐는지, 기자가 말하려는 내용이 팩트에 기초했고 논리적으로도 합당한지, 기사의 구조는 제대로 짜였는지, 표현의 수위는 적절한지, 오탈자는 없는지, 쉼표와 따옴표 등은 제대로 사용됐는지 볼 것이 많았다.
 
완전 초짜도 아니고 몇 년 동안 기사 좀 썼던 경력기자의 원고에도 빨간 줄을 죽죽 그어댔으니 신입기자들은 오죽했을까. 처음 프린트해온 원고에서는 처음의 의도에 맞게 취재가 됐는지, 들어갈 내용이 다 들어간 것인지만 놓고 얘기했다. 그것을 수정해서 가져오면 기사의 기승전결과 효과적인 배치, 표현의 수위가 일정하지 않은 부분 등을 지적했으며, 다시 고쳐오면 문장의 호응과 능동형 피동형 표현, 반복적인 단어사용, 오탈자를 잡아냈다.
 
그냥 통과시킨 기사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나의 기사를 너댓 번씩 고쳐 쓰는 경우가 흔했다. 기사 하나를 놓고 한 시간씩 붙잡고 잔소리를 늘어놓았으니 듣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나라도 징글징글 질렸을 것이다.
 
그땐 몰랐다. 내 눈에는 원고만 보였고 마주앉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지금은 그럴 기회도 별로 없고 또 그렇게 말하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배에게 업무의 내용을 놓고 다그치는 것이 효과는 적고 마음만 다친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꼰대질’이라는 단어가 일반명사화되면서 내가 지금 꼰대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검열을 하게 된 측면도 있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가 협력업체는 물론 자사 직원들에게, 집안일 거드는 사람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몹쓸 짓을 했다는 뉴스를 보고 처음엔 화가 났으나 어느 순간 문득 오래전 내가 후배들에게 했던 갑질이 생각났다. 조현민 전무도 자기업무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나와 다르지 않다. 부끄러웠다.
 
며칠 전 모 은행 기자실에서 내게 잔소리를 잔뜩 들었던 후배기자 중 한 명을 만났다. 이제는 어느 매체에서 어엿한 팀장을 맡고 있었다. 후배기자는 내게 “그때 호되게 배워서 남보다 조금 더 빨리 더 나은 기사를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지만, 감사인사로 들리지 않았다. 그는 진심이었을 지라도 내 마음이 부끄러우니 미안할 따름이었다.
 
어디 이것뿐이랴. ‘미투(#MeToo) 운동’은 어떨까. 대학시절 남녀 선후배들과 어울려 놀던 거의 모든 곳에서 성희롱이 등장했다. 그게 재밋거리였다. 입학하고 처음 술자리에서 그러고 노는 선배들을 보았을 때는 듣는 나도 뜨악할 정도였는데, 점점 거기에 물들었고 나중에 입학한 후배들에게도 전파했다. 1990년대엔 다 그랬다고 어물쩍 넘기기엔 여자 동기들, 선후배들에게 낯뜨거웠다.
 
‘내로남불’은 재벌과 정치인, 법조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괴물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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