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롯데쇼핑(023530)이 롯데몰 군산점 개점 준비 과정에서 피해 소상공인들과 상생 합의를 거쳤는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롯데쇼핑은 대규모 점포 등록 신청을 앞두고 소통협의체에서 논의된 내용을 지역협력계획서에 반영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소상공인들은 논의 과정에서 협상이 결렬되며 협의체가 와해됐기 때문에 합의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례에서처럼 유통산업발전법만으로는 소상공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어려운 만큼 사업조정 제도를 통한 규제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롯데몰 개점 피해를 주장하는 소상공인들은 피해 당사자와 합의를 마쳤다는 롯데 측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롯데는 군산점 개점 준비 과정에서 '대형 아울렛 입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와 협의한 내용을 지역협력계획서에 담아 시에 제출했다고 밝히고 있다. 합의를 마쳤음에도 비대위의 일부 구성원이 또다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롯데몰 개장 피해를 주장하며 활동했던 비대위 관계자들은 애초부터 롯데와 협의한 사실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군산시는 롯데가 군산시에 대규모 점포 등록을 신청하기에 앞서 2016년 4월부터 소통협의체를 마련해 롯데와 피해 상인들 입장을 조율했다. 이 협의체를 통해 피해 상인과 롯데가 처음 논의를 시도했다. 당시 협의체에서는 지역상인 아울렛 입점, 수수료 인하, 중첩 브랜드 배제 등의 방안을 논의했지만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해 협의체가 와해됐다. 피해 상인들은 2011년부터 롯데몰 개점 연기 투쟁을 벌이면서도 합의 도출을 위해 논의에 참여했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한 만큼 합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규모 점포 등록 신청 이후 거쳐야 하는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에서도 피해 상인들과의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유통발전산업법에 따르면 대규모 점포 등록을 원하는 업체는 지자체에서 상시 운영하는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를 거치도록 돼 있는데, 이 협의회는 대형 유통업체, 중소 유통업체, 소비자단체, 유통분야 전문가, 공무원 등으로 구성돼 자문 역할을 한다. 상시 단체여서 롯데몰 피해 상인들은 협의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들은 당사자 참여를 강하게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협의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전통상인회 회장과 슈퍼협회 회장의 의견을 반영해 아울렛에 마트가 빠지는 결과를 얻었지만 정작 아울렛 매장의 대부분인 의류업체들의 피해는 제대로 논의될 수 없는 구조였다. 군산시 관계자는 "피해 당사자들이 협의회에 참여할 수 없었던 데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는데, 상시 운영 조직이기 때문에 개별 사안별로 협의회를 구성하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롯데는 지역협력계획서에 비대위와 협의한 내용을 담았다는 것을 합의의 근거로 대고 있다. 대규모 점포 등록을 하고자 하는 업체는 관련법에 따라 지자체에 지역협력계획서와 상권영향평가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 상권 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돼 있고, 그 과정에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의 자문을 받는다. 하지만 롯데가 합의 당사자로 지칭하는 비대위는 점포 등록 신청에 앞서 마련됐던 협의체나 신청 이후 논의 테이블인 협의회 어느 곳에서도 롯데와 합의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군산시에서도 양측이 명확히 합의한 적은 없다고 보고 있다. 시에서 마련한 협의체에서 논의된 내용이 지역협력계획서에 반영되기는 했지만 그 내용을 두고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롯데는 합의의 또 다른 근거로 100억원 규모의 상생 펀드 조성과 롯데마트 입점 제외 결정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이 비대위를 비롯한 피해 당사자들의 참여가 배제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에서 도출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롯데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군산시는 상인들과의 합의를 위해 위해 협의회 논의 과정에서 상생안을 제시했고,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노력이 롯데가 주장하는 상생안 도출로 이어진 것이라는 게 군산시의 설명이다. 롯데마트 입점 제외의 경우 이마트 군산점이 불과 600m 떨어져 있고, 군산시내에 이미 입점한 롯데마트도 반경 2km 내에 위치해 있어 처음부터 마트 입점이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상인들은 주장한다.
한 피해 상인은 "롯데는 마트 입점 제외로 상생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색내고 있지만 근처의 이마트 반대 등으로 어차피 들어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마트와 유사한 성격인 미니소와 다이소를 몇백평 규모로 만들어서 고객들을 유인하고 있어 지역 상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인들이 260억원의 거액을 요구했다는 롯데의 주장 역시 과도하다고 피해 상인들은 보고 있다. 군산시는 2016년 3월 임용택 군산대 교수에게 롯데몰이 입점할 경우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용역을 의뢰했다. 그 결과 지역 전체 상권 매출의 47.35%가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시는 유대근 우석대 교수에게 막대한 피해 대책 마련 방안에 대한 용역을 다시 요청했고, 두 번째 용역에서 제시된 소상공인 활성화 대책에서 450억원의 기금을 만들어 재단을 설립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450억원 가운데 롯데 260억원을 포함해 페이퍼코리아, 도비, 시비, 상인 기금 출연 등의 자금 마련 방안이 제시됐다.
군산시는 롯데몰 개점 영향 용역의 또 다른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롯데의 대규모 점포 신청을 받아들였다는 입장이다. 군산시민의 70%가 아울렛 개점에 찬성했기 때문에 대형 쇼핑몰 개점에 따른 도시 활성화와 이에 따른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해서도 고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 상인들은 군산시가 제대로 된 대책 마련 없이 롯데의 대규모 점포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지역 내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롯데몰이 들어선 동군산 지역은 구도심 외에 신도시 개발사업으로 진행돼왔다.
또 다른 피해 상인은 "지역 경제규모가 늘어나면서 도시가 팽창되면 문제가 없지만 군산시는 주택보급률이 120%에 이르는 상황에서도 인위적으로 신도시를 개발하며 갈등을 키워왔다"며 "최근에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중단,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 산업·고용 위기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지역 경기가 침체에 빠져 불안감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업정지 위기로 롯데몰에 고용된 직원들 피해 우려가 부각되고 있지만 롯데몰로 인한 이익의 상당부분을 롯데 본사가 가져가는 구조로 돼 있어 지역 경제 순환에는 큰 도움이 안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군산시가 롯데몰을 무리하게 승인해준 만큼 피해 영역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중기부에 신청된 사업조정은 유통산업발전법상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 당사자들이 정부에 호소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게 소상공인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산업발전법에서 대규모 점포 등록을 신청하는 사업자에게 요구하는 사항을 지자체가 어느 정도의 요건을 근거로 결론을 내리지만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 여지가 많다고 본다"며 "이번 사례에서처럼 직접 피해를 입는 분야와 충분히 상생 협약이 이뤄질 수 없다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에서 규정하는 사업조정이 대안으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전북 군산월명체육관에서 롯데몰 군산점 대규모 채용박람회가 열린 모습. 사진/뉴시스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