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호치민(베트남)=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더운 공기. 입국 심사장으로 이동하는 복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대형 오토바이 주차장. 아세안의 관문으로 부상한 베트남이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수화물을 찾으러 에스컬레이터를 타자 정면으로 신한은행과 효성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을 기다리며 컨베이어 벨트 위를 돌고 있는 가방들 뒤로는 삼성전자의 광고 영상물이 무한 반복됐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S9 시리즈는 물론 갤럭시J7, 갤럭시노트8, QLED TV, 액티브워시 세탁기 등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들이 등장했다. 한국의 생산기지이기도 한 베트남에 대한 이질감은 그렇게 씻겨졌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신남방정책'을 제시했다. 신남방정책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인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제적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겠다는 전략 중 하나다. 아세안과는 수요에 기반한 실질 협력관계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과 유사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정부는 그중에서도 베트남과의 관계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해 11월과 올 3월 두 차례나 베트남을 찾았다. 2020년까지 교역액 1000억달러 달성 등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채택하고, 베트남의 소재·부품 산업 지원 등을 통한 호혜적인 무역 기반을 확대, 조성키로 했다.
한국과 베트남의 교역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베트남 수출은 477억5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6.3%, 수입은 161억7000만달러로 29.5% 급증했다. 한국에게 베트남은 중국과 미국을 잇는 3대 수출 시장이며, 8번째 수입 대상국이다. 진출 기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중국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놓고 갈등을 겪으면서, 그 대안으로 베트남에 대한 주목도가 한층 높아졌다. 한국무역협회 베트남지부 등에 따르면 베트남의 한국 기업 수는 6145개(지난해 말 기준)다. 1년 사이 600개 이상이 늘었다. 진출 기업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김일산 한국무역협회 호치민지부장은 "중국에서의 투자 만족도가 10~20% 정도였다면 베트남은 80% 이상"이라고 말했다. 한국 교민 수는 호치민 10만명, 하노이 6만명 등 20만명에 육박한다.
투자 영역도 다양해지고 있다. 봉제·섬유 등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 일변도에서 금융, IT, 유통, 영화 등 첨단산업으로 확대됐다. K-POP과 드라마 등 한류가 현지에서 높은 인기를 끌면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도 좋다. 올 초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23세 이하)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후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더욱 높아졌다. 한국의 보다 많은 투자를 희망하는 베트남 정부의 의지도 강력하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의 경제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주기를 희망한다.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을 생산기지로 삼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술 이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임충현 대한상공회의소 베트남사무소장은 "베트남은 민족성보다는 실용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아이템만 잘 잡는다면 성장 기회는 여전히 큰 시장"이라고 말했다.
하노이·호치민=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