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갱도 23∼25일 폭파" 북, 비핵화 첫 약속 이행

트럼프 반색 "똑똑하고 정중"…폼페이오 "한국 수준 번영달성 협력"

입력 : 2018-05-13 오후 1:57:44
[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작업을 오는 23~25일 사이에 일기 조건 등을 고려해 진행하겠다고 12일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을 한 달 남겨놓고 나온 이번 발표는 북한이 천명한 비핵화 방안에 대한 첫 약속 이행인 셈이다. 성공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일종의 ‘통 큰 액션’으로도 풀이된다.
 
북한은 이날 외무성 공보를 통해 “핵시험장 폐기는 모든 갱도들을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붕괴)시키고, 입구들을 완전히 폐쇄한 다음 지상에 있는 모든 관측설비들과 연구소들, 경비구분대들의 구조물을 철거하는 순차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핵시험장 폐기와 동시에 경비인원들과 연구사들을 철수시키며 핵시험장 주변을 완전히 폐쇄하게 된다”고 밝혔다. 또 “핵시험장 폐기를 투명성 있게 보여주기 위해 국제기자단의 현지 취재활동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면서 현지 프레스센터 설치, 교통 및 숙박 등의 편의를 제공키로 했다. 다만 초청 대상국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등 5개국으로 한정했다.
 
북한의 이번 풍계리 폐쇄 발표는 ‘더 이상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선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핵탄두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할 정도로 소형화·고도화하려면 몇 차례 더 실험을 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라며 “그런데 그런 실험을 더 이상 안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낙진 등의 문제로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장소는 제한적인데, 땅이 좁은 북한에서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장소가 풍계리다. 그래서 풍계리 폐쇄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실험장이 협소하다”는 이유를 들어 취재진을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으로 한정하고 일본을 배제한 점도 주목된다. 영국은 미중러와 함께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긴 하지만, 6자회담의 당사국인 일본을 제치고 풍계리 폐쇄 증인으로 선정될 이유가 딱히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때도 6자회담 당사국 언론사들이 현장을 취재한 점을 감안하면, 결국 북한의 의도적인 ‘일본 패싱’으로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대화 과정에 사사건건 딴지를 놓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불만을 나타냄과 동시에, 향후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염두에 두고 일종의 ‘몸값 올리기’라는 해석도 있다.
 
북한이 이번 풍계리 폐쇄 과정에 언론인만 초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관련 전문가들을 초대하지 않은 것은 우선 속도감 있는 폐쇄 조치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굳이 전문가 검증이라는 번거러운 과정을 거치며 비핵화 속도를 늦추는 것보다 속도전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최대한 끌어모으겠다는 것이다. 폐쇄 예정일인 23일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기도 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하고 “빠른 시일 내 간단명료하게 일을 진척시켜나가는데 필요한 것 아닌가”라며 “전문가가 포함되면 여러 사전 절차가 필요해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의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의 핵 능력을 숨기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카드게임에서 자신의 패를 숨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최대한의 보상을 얻어내기 위해선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핵 능력이 어느 정도 과대하게 평가될 필요성이 있다. 비핵화 과정에 전문가의 검증은 필요하지만, 이는 북미 회담이 끝난 뒤에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이번 발표는 바로 전날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를 하는 과감한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발언에 화답하는 성격도 갖는다. 폼페이오 장관이 핵폐기의 보상 의미로서 ‘대가’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우리는 과거 미국의 적국이었지만 현재는 가까운 파트너가 된 사례를 공유하고, 북한도 그렇게 되길 함께 희망했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지난 9일 회동 내용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실험장 폐기를 발표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매우 똑똑하고 정중한 행동”이라고 반색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이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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