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 앞에는 내달 12일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양측을 조율하는 과제가 놓였다. 문 대통령이 지향하는 한반도 운전자론이 사실상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2일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마치 다 이긴 게임인양 나오고 있는데, 중재자를 자임한 남한이 도대체 뭐하고 있는가’라는 불만도 있다”고 지적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식 북핵 포기’, ‘핵·미사일에 더해 생화학무기도 완전폐기’ 주장은 물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북한이 비핵화 시 한국 수준의 번영을 달성토록 협력할 것”이란 발언 또한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 행정부 내 대북 강경파들의 대응도 우려를 더한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장난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정상회담이 취소될 수 있냐’는 질문에는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여차하면 ‘판’을 깰 수 있다고 위협함으로써 회담 직전까지 북한에 협상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선언을 통해 단초가 마련된 한반도 평화정착에 정점을 찍어야 할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마찰을 일으킬 경우 상황은 이전보다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북측의 불만이 우리 정부를 향하고 있다는 점도 문 대통령으로선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지난 16일 김계관 북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 다음날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차후 남북관계 방향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성사됐지만, 판문점 선언 후 중재자 역할에 소홀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읽힌다. 김 교수는 “판문점 선언 후 우리 정부가 보이는 안이함에 대한 불만 표출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한미연합공중훈련(맥스선더) 중 F-22 스텔스 전투기 참가,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 국회강연, 최근 탈북 여 종업원 송환 문제를 이런 태도 변화의 구실로 삼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현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전날 “남북 정상회담 이후 순탄하게 가다가 한미 정상회담, 또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잠시 주춤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어 국민들이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긴장을 놓지 않고 향후 벌어질 상황관리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 방미 일정에 동행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2일(현지시간)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을 만나 “북미 정상회담은 지금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면서도 “북한 측 입장에서 우리가 좀 이해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북미 간 비핵화 로드맵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입장을 반영하는 방향의 논의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다만 미 행정부 고위 각료들이 북미 정상회담의 정상적 추진 의사를 밝히는 점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마음을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재로서는 (북미 정상회담 추진 계획이)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은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며 사태 수습에 나서는 중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전 볼턴 보좌관·폼페이오 장관을 따로 만나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북한과의 협의에 매진해달라”고 당부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방미 일정을 마친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핫라인 통화를 언제 할 지도 관심하다. 청와대는 그간 핫라인 통화 시점에 대한 질문에 “어떤 내용으로 통화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시급하지 않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진행한 만큼 여기서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북미 간 입장조율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뒷줄 가운데)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