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재판 거래' 의혹 등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자신은 재판에 간섭하고 '흥정거리'로 삼거나 자기 의견에 동조하지 않은 법관에게 불이익을 준 일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1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관련해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 하물며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아서 재판 방향을 왜곡하고 그걸로 거래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이어 "제가 간섭해 대법원 재판이 왜곡됐다고 기정사실로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대법원 재판은 정말 순수하고 신성한데 함부로 깎아내리는 것에 대해 저는 견딜 수가 없다. 대법원 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국민도 이번 일로 재판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면 거두어주시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또 "제가 재임 시 추진했던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하는 견해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이번 특별조사단 조사에서 상고법원 추진에 반대하는 법관 견해가 있었고 법원행정처가 이들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게 지적됐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책에 반대한 사람, 일반적인 재판에서 특정 성향을 나타낸 사람 등에게 어떤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 저는 그런 이유로 법관에게 인사상 또는 사법행정 처분을 놓고 불이익을 주는 것은 단호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불이익받거나 편향된 대우를 받은 사람은 없다. 최종적으로 조치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제가 있을 당시 법원행정처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 지적이 사실이라면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통감한다"며 "재직 시 일어난 일 때문에 법원이 불행한 사태에 빠진 데 대해 사법행정 총수로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국민 여러분께서는 재판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 누구도 그 과정에서 불이익이나 편파적인 대우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하시고 이전에 법원에 주던 신뢰를 유지해주시길 간청 드린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사법부에 대해 더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려는 목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특별조사단 조사 요구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1년 넘게 400명 넘게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사안을 밝히지 못했는데 제가 가야 합니까"라며 "사법부에서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저한테 보고돼도 저 혼자 머리로 다 기억하고 소화할 수 없다. 수장이 다 알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결정되면 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한답니까. 그때 가서 보죠"라며 확답을 피했다. 이번 사태 총 책임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겠지요"라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25일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법원행정처의 요주 법관 정리 명단의 실물은 없었지만,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박근혜 정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협조하고 일부 법관들을 뒷조사한 문건 등을 공개했다.
그간 대법원은 청와대 기조와 판결 간 연관성 등을 부인해왔지만 청와대가 신경 쓰고 있는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정부 기조대로 알아서 재판을 처리한 의혹이 드러나면서 재판 당사자들이 잇달아 고발 대열에 합류하는 등 당시 대법원 최고 책임자였던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처벌 요구가 빗발쳤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국민 담화에서 사법행정관 남용 사태에 대해 사과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형사조치를 놓고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및 각계의 의견을 종합해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등 자신의 재임 시절 일어난 사법남용권 남용 사태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