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얼마 전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던 김 모 양은 "심사 결과 대출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상담했던 은행원으로부터 "대출이 승인됐다. 은행으로 오시면 된다"는 전화를 받게 됐다.
하루만에 이렇게 바뀐 이유는 뭘까?
은행대출을 받을 때는 일단 '자동승인'과정을 거친다. '스코어링(Scoring)'이라고 하는데 신용등급, 소득, 재직연수, 결혼 여부 등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위험도를 계산해 대출 여부와 금액을 따진다.
대부분은 여기서 탈락하면 아예 대출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동승인'에서 거부됐다고 대출이 안되는 건 아니다. 이후에는 은행원이 은행 본부에 승인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를 '본부승인' 혹은 '저지먼트(Judgement)'라고 한다.
위의 김 양은 '자동승인'에선 거부됐지만 '본부승인'이 났던 것.
◇ "은행원도 글 잘 써야 해요"
본부승인은 본점 개인여신 심사부에서 판단을 내린다. 판단 근거는 바로 은행원의 '글'과 고객의 객관적 상황이다.
서울 청담동 모 은행 지점에 근무하는 이 모 대리는 "대학 재직시부터 PD 등 언론사 쪽 공부를 해와 남들보다 글을 잘 쓰는 편"이라며 "동료들이 본부승인용 글을 대충 입력하는데 반해, 최대한 꼼꼼하고 정성들여 쓰다보니 본부승인율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 대리는 또 "내 옆자리 동료는 '~하고 ~해서 ~ 하니 신청한다' 등 복문(複文)에 맞춤법도 틀리기 일쑤라 승인율이 높지 않다"며 "숫자로만 움직이는 은행에서 글쓰기 실력이 좋은 행원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가'가 '신용불량자' 대출까지 해줄 수는 없다. 문체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객관적 상황, 즉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
가령 꾸준한 소득이 있고 연체가 없으며 동거중인 가족 소득이 확인되는 경우 본부 승인이 쉬워질 수 있다.
은행원의 '근성'도 중요한 항목.
또 다른 은행의 한 직원은 "대출시 고객이 만기도래 적금에서 5%를 떼 먼저 상환하겠다는 '약속'을 본부승인글에 올렸다"며 "그런데 대출이 거부되자 다음날에는 '10%' 다다음날에는 '15%'라고 차츰 비율을 높이며 본점 심사부와 협상(?)한 결과 대출 승인이 떨어졌다"고 소개했다.
◇ 본부승인률 외부 공개 불가
본부승인의 혜택을 제일 많이 받는 건 '학원업계'라는 후문도 있다.
중소형 학원의 경우 몇몇 업체는 소득세를 내지 않고 현금으로 월급을 주다보니 학원강사들은 은행 대출시 소득 증명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학원과 가까운 은행 지점에 들려 은행이 직접 재직 여부와 월급을 확인하게끔 하고 은행 직원이 '본부승인'을 요청하면 대출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본부 승인'은 얼마나 이뤄질까?
한 관계자는 "본부승인율은 은행별 대출 유형이 달라 제각각"이라며 "재직중인 은행은 85~75%정도 되는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은 본부 승인율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본부 승인율이 높은 은행만 골라 대출 브로커들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