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국산맥주 발목잡는 낡은 '주세법'

입력 : 2018-06-20 오후 3:33:45
[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수제맥주와 관련한 한편의 글이 올라왔다. '주세제도 개편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은 20일 기준, 청원인원이 1900명에 육박하며 주류업계 내에서 이슈화되고 있다.
 
청원자는 글을 통해 "현행 주세 제도에서는 양질의 원료로 술을 빚어 좋은 병에 담그면 제조자가 내야 할 세금이 폭증하기 때문에 제조자가 원가 낮추기에만 골몰하게 된다"며 "소비자는 희석식 소주, 맛없는 맥주, 저급 와인 위주로 마실 수밖에 없고 좋은 품질의 고급주는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주류에 조세를 부과하는 법률인 '주세법'에 대한 주류업계의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의 현실에 뒤떨어진 제도 탓에 국내 주류회사들의 성장도 발목 잡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무관세 수입맥주의 무혈입성이 본격화되며 국산 맥주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고, 최근 수제맥주를 중심으로 한 중소 주류제조업체들도 역차별에 시달리며 공정한 제도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국산과 수입산 맥주의 가격 차이는 세금을 어디에 붙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산 맥주는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 이윤 등을 모두 붙인 순매가에 제조원가의 72%와 주세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를 매긴다.
 
반면 수입맥주는 이윤 등을 제외한 공장출고가와 운임비 등을 더한 수입 신고가에 같은 세율을 부과한다. 하지만 수입 신고가는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에 업자가 낮게 신고하면 세금도 덜 낼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현행 주세법이 가격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는 종가세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종가세가 아닌 종량세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30개국이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1990년 종량세로 전환한 이후 주류 품질이 향상돼 사케와 위스키가 명성을 얻고 있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수입맥주 열풍도 현행 주세법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관세청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량은 33만1211톤으로 전년(22만508톤)에 비해 50%가량 늘었다. 맥주 수입액만 사상 최대인 2억6309만달러(약 2807억원)를 돌파했다. 더욱이 올해부터는 미국산 맥주의 경우 관세가 없어졌고 오는 7월에는 유럽산 맥주도 관세가 사라질 예정이어서 수입맥주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주세법 적용 과정에서 수입맥주와 달리 재료비나 판관비 등이 훤히 드러나는 국산 맥주는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국산 수제맥주도 마찬가지다. 주세법 개정으로 지난 4월부터 양조장만 있으면 수제맥주를 만들어 유통채널에 납품할 수 있도록 제조업 시설 기준이 완화됐지만 수입 맥주에 역차별 당하는 상황은 매한가지다.
 
임성빈 수제맥주협회 회장은 "국내맥주가 역차별 받는 상황이 수년간 지속된다면 맥주산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수입맥주로 채워지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며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 환경 조성을 위한 정부차원의 정책적 배려와 각종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가진 대기업 총수 만찬에서 고급 와인이나 샴페인이 아닌 강원도 한 중소기업의 수제맥주를 만찬주로 선택해 화제가 됐다. 시장의 다양성을 주도하던 국내 수제맥주를 부각시키며 시사하는 바도 컸다. 하지만 공정성이 담보되지 못하면 다양성 역시 확보될리 만무하다. 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맥주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라도 낡은 주세법의 손질이 시급해 보인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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