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주요 수출 품목인 스마트폰과 TV, 가전은 직접 영향권에서 벗어나 그나마 다행이라는 분석이다.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역시 중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가는 물량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여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산 완제품의 대미 수출 약화에 따른 중간재 수출 감소 가능성은 우려 요인이다. 중국 제조사들은 TV와 스마트폰에 한국산 디스플레이와 반도체를 주로 사용한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 그중 79%가량이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등 중간재로 추산된다.
보복관세 피해는 아이폰…TV 등 가전도 안정권
전문가들은 미국이 정보기술협정(ITA) 위반을 감수하면서 무관세 대상인 스마트폰에 관세를 매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표기업인 애플의 큰 피해가 예상된다. 애플은 자국에서 제품을 설계하고 해외공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이윤을 취하고 있다. 아이폰은 대만 기업인 팍스콘에 의해 중국에서 조립·생산되는 100% 중국산이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현실화된다면 800달러 아이폰 가격이 960달러로 인상될 수 있다. 미중 관계 악화로 중국 당국이 애플을 압박하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부담이다. 중국이 애플의 부품업체들을 압박해 공급에 차질을 빚게 하거나 국가 안보를 이유로 아이폰 대신 화웨이나 샤오미 등의 구매를 권장할 경우 중국 시장에서 애플의 입지가 급격히 약화될 수도 있다. 2017년 기준 애플 매출 가운데 20%(447억달러 규모)가 중국에서 발생했다.
반면 미국 시장에서 주목받는 중국 업체는 ZTE, 모토로라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이들의 점유율 합계는 14%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매 분기 1~2%포인트 감소하고 있다. 스마트폰 관세로 중국의 피해는 제한적인 반면 미국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미중 간 무역전쟁 격화로 반사이익 가능성도 조심스레 염두에 두고 있다. 중국 생산 비율이 낮은 삼성전자와 LG전자로서는 애플 대비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중국의 점유율 하락을 반등 기회로 삼을 수 있다.
TV도 미국의 대중 제재 품목에서 제외돼 급한 불은 껐다는 분위기다. 삼성전자와 LG전자 TV는 중국이 아닌 멕시코에서 대부분 생산돼 피해 영향이 제한적이었지만 이마저도 상쇄됐다. 시장조사기관 DSCC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소화하고 있는 물량은 미국 판매량의 10% 정도다. 나머지 45인치 이하의 TV는 베트남에서, 45인치 이상은 멕시코 공장에서 대부분 생산하고 있다. LG전자의 중국 현지 TV 생산 규모는 삼성전자보다 더 적은 수준이다.
가전도 비교적 안정권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앞서 한국산 세탁기에 발동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피하기 위해 각각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테네시주에 세탁기 공장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조기 가동에 돌입했으며, LG전자는 이르면 3분기께 가동할 예정이다. 냉장고와 세탁기는 국내와 베트남, 멕시코 등에서 생산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과 TV 등 전자제품의 중국 생산 비중이 높지 않고, 관세 품목에도 포함되지 않아 당장 직접적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요 둔화 '촉각'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필요로 하는 완제품들도 관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직접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추가 조사를 통해 중국산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대목이지만, 국내 업체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부품은 중국 내수용이 대부분이라 피해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D램을 생산 중이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비중은 삼성전자 20%, SK하이닉스 30%가량이다. 대부분 중국 내수용이다. 디스플레이 역시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량 대부분이 중국 내부에서 소진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국 쑤저우 공장에서 8세대 TV용 대형 디스플레이 LCD 패널을,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 공장에서 8.5세대 LCD 제품을 생산 중으로, 중국 업체들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하이엔드급 제품이 대부분이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대부분은 현지에서 소화되고 일부가 해외로 나가는데 패키징을 한국에서 하기도 해,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물량은 전체 생산 물량 중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중국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관세를 매겨도 국내 업체에 미칠 여파는 크지 않다는 얘기다.
다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중간재이기 때문에 고객사의 실적 둔화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TV를 포함한 시청각 제품 수출액은 1284억7000만달러로, 이중 대미 수출액 비중은 22.6%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이 단절되면 이 수출액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고, 중국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납품하는 국내 중간재 수출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 수출 비중은 79%에 달한다. 품목별로 보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타격이 상당할 전망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979억달러로 이 가운데 중국이 393억달러(40.1%)를, 디스플레이 수출액 273억달러 중 중국이 185억달러(68%)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다.
때문에 수출의 버팀목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수요 둔화가 현실화되면 국가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2015년만 해도 11.9% 수준이었지만, 지난달에는 20.3%까지 커졌다. 관련기업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의 제조업 굴기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강한 만큼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무역구조상 반도체를 비롯한 한국의 중간재 수출의 타격은 불가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