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대기업 8년차 직장인 A씨는 총 6개월간의 출산·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준비하던 중 회사로 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당초 회사 눈치를 살피느라 3개월 밖에 쓰지 못한 육아휴직을 1년 다 쓸 수 있도록 해줄테니 휴직 기간이 끝나면 퇴사를 해달라는 것. 회사는 휴직 연장 신청서와 사직서를 함께 받아갔다. 사실상의 해고 통보다. 억울한 마음에 고용부 등 관련 당국에 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복잡한 절차와 혹시라도 있을 불이익에 마음을 접었다. 그는 결국 타의로 전업주부가 됐다.
#20개월 아들을 키우고 있는 B씨는 올해 말 복직을 앞두고 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아이 양육을 전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가 보장한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 이외에 회사 차원에서 무급 육아휴직 기간을 추가로 제공해 준 덕분이다. B씨는 한 차례 유산을 겪은 터라 임신 기간 중에는 근무 시간 단축 등 내부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정부가 저출산 정책을 연이어 내놓으며 출산 장려에 나서고 있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여전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체감할 만큼 개선되지 않은 탓이다. 임신·출산으로 경력 단절에 빠지는 여성 노동자도 적지 않다. 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발맞춰 내부 문화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4일 발표한 '2018년 저출산 정책에 대한 2040 여성 노동자 인식' 조사 결과, 저출산의 원인으로 '소득 및 고용 불안'(30.6%)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어 사교육비 등 부담(22.3%), 일·생활 양립이 어려운 업무환경(20.9%), 집 마련 등 주거비 부담(10.5%), 보육부담(8.3%) 등 순이었다.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경제적 여건과 근로 환경에 대한 불만으로 의견들이 모아진다.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들을 감안할 때 쉽지 않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조사 결과 여성 노동자의 이상적 자녀수는 평균 2.0명으로 나타났다. 이상적 자녀수를 2명으로 답한 사람이 63.2%로 가장 많았고 3명(16.0%), 1명(13.6%) 등의 순이었다. 0명은 3.9%에 그쳤다. 반면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자녀수는 평군 1.2명으로 확인됐다. 1명 응답자가 47.9%로 가장 많았고 2명이 33.9%로 집계됐다. 낳지 않겠다는 응답은 15.5%로 나타났다.
자녀가 있는 직장여성 중 출산휴가 이외에 육아휴직을 사용한 비율은 35.8%였다. 평균 휴직기간은 8.9개월로 확인됐다. 기업규모별로는 300인 이상 기업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은 50%가 육아휴직을 사용한 반면, 50~299명 기업에서는 38.5%, 50인 미만 기업에서는 28.9%로 육아휴직 사용에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양육은 부모님께 도움을 받는 경우가 40.6%로 가장 많았다.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이용'(23.6%), '본인 스스로 양육(21.2%)', '방과후 학교·사설학원 이용'(10.9%), '가정 도우미(3.0%) 등의 순이었다. 연령대별로 보면 자녀가 어릴 수록 부모님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일·생활의 균형과 조직 문화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필요한 정부 저출산 정책을 묻는 질문에 80%(중복응답 포함)가 '일·가정 양립 사각지대 해소'를 꼽았다. 기업이 노력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출산·육아휴직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조직 문화 개선'(42.3%), '유연근무제·임산부 단축근무제 등 시행'(25.2%), '보육시설 마련'(17.8%) 등이 지목됐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