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미국이 예고했던 대로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의 보복 조치도 효력을 발휘하면서 양국 간 무역전쟁이 현실화됐다. 미국과 중국에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양국의 무역전쟁으로 상당한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의 제재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 우리의 대중 중간재 수출부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의견이 우세했다. 한국 경제의 무역 의존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8%에 이르고, 대중 수출은 25%, 대미 수출은 12%를 차지한다.
양국은 지난 6일(현지시간) 340억달러 규모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오는 20일을 전후로 추가로 관세를부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중국산 반도체를 포함한 160억달러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중국도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지만 국익 수호를 위해 반격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간 고래싸움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중국에 총 1421억달러를 수출했으며 이 중 반도체를 비롯한 중간재 비중이 78.9%였다. 중국 로컬 기업과 현지에 생산기지를 마련한 한국 등 해외기업들은 한국산 반도체, 기계류 등 중간재를 수입해서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중국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우리 기업도 피해를 보는 구조다.
때문에 한국은 양국의 무역전쟁으로 피해를 볼 국가로 지목되고 있다. 경제분석기관 픽셋에셋매니지먼트가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수출분야 위험요인을 분석한 결과 양국간 무역전쟁으로 두 당사국 외에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10개국 중 한국을 62.1%로 6위에 올렸다. 이 비율은 해당 국가의 수입품 부가가치와 수출품 부가가치의 합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할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태국, 말레이시아와 함께 0.5%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미국이 총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해 미국의 대중 수입이 10% 감소할 경우 우리의 대중 수출이 282억6000만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대중 수출 규모의 19.9%에 해당하는 규모다. 무역협회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봤다. 미중 무역분쟁이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경우 우리나라의 총수출이 1억9000만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미중 간 전면전에 유럽연합(EU)까지 가세할 경우 수출이 367억달러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치는 중간재 수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데서 기인한다. 특히 한국 수출의 버팀목인 반도체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산 반도체는 미국의 2차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됐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D램을 생산 중이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비중은 삼성전자 20%, SK하이닉스 30%가량이다. 대부분 중국 내수용이라 피해가 비껴있다. 일부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피해가 예상되면 국내 생산으로 돌리면 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하지만 중국이 10%에 대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고, 미국은 성장궤도에 오르려는 중국 반도체 시장을 억제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피해에 비껴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중 간 반도체를 놓고 제재가 심화되면 한국에 불똥이 튈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중간재인 기계업종도 타격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이 생산한 건설장비의 상당량을 수출했다. 이 가운데 북미와 중국 비중이 각각 19%, 10% 수준이다. 현대건설기계와 두산인프라코어 등은 이미 중국에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어 현지 시장변화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철강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미국이 해외 철강사에 대해 고강도 관세 정책을 펴고 있는 상황에 미국이 한국산 철강에 대한 고강도 관세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을 중국 철강 우회수출국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업계는 미중 무역전쟁의 직접적 영향보다는 이로 인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될 조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수출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시장 다변화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지 기업과 기술 제휴를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파트너십을 강화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수출 품목과 지역을 다각화, 현지화해 특정 품목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인도, 아세안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신규 시장에 대한 공략을 강화해 수출 시장의 외연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