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만남부터 부담을 지게 됐다. 삼성전자 인도 공장 준공을 축하하러 간 문 대통령이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부탁하면서 이 부회장의 속내도 복잡하게 됐다. 수차례 허리를 숙이며 깍듯한 인사를 하는 등 긴장감 속에 문 대통령을 영접했던 이 부회장의 당혹감도 컸다는 후문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문 대통령은 삼성전자 인도 노이다 신공장에서 이 부회장을 만나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접견은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준공식에 앞서 대기실에 5분가량 머물던 문 대통령이 밖에서 대기 중이던 이 부회장과 홍현칠 삼성전자 서남아담당 부사장을 불러 뼈 있는 요청을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신공장 준공을 축하한다"면서도 작심한 듯 국내 투자를 거론했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께서 멀리까지 찾아주셔서 여기 직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며 "감사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재계는 문 대통령의 의중에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 측은 "인사 차원에서 환담을 나눈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인도까지 가서 국내 투자와 일자리 문제를 꺼내든 배경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 상고심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그간의 거리두기를 끝내고 처음 한 요청인 까닭에 무게감도 남다르다. 때문에 지난 2월 집행유예 석방 후 주로 해외 일정을 소화하며 투자와 협력을 모색했던 이 부회장도 국내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됐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우리도 매우 당혹했다. 격려보다 질책으로 받아들인다"며 "어쨌든 국내를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노이다 신공장 증설로 중국·베트남·인도 등 해외 3대 생산거점을 완성한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인공지능 등을 중심으로 투자 확대에 나설 것으로 재계는 전망하고 있다. 하반기 채용 규모도 당초 계획보다 대폭 늘어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 등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의 라인 성능 개선 등을 위해 시설투자에 43조4170억원을 사용했다. 전년도 25조4994억원에서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에만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세탁기 공장 건설(3억8000만달러), 평택·화성 반도체 라인 증설(36조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증설(70억달러) 등 대규모 투자 계획을 연이어 공개하며 이중 일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이 잇따라 대규모 해외 투자에 나서면서 국내 경제의 낙수효과는 사실상 실종된 상태라며, 기업들의 국내외 투자도 구분해서 공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