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세준 기자] 정부의 일자리 창출 압박에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삼성전자는 "국내 추가 투자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구체화된 계획은 없는 상태며 다른 기업들은 미국발 통상 압력과 노사 문제 등 현안 해결이 먼저라는 반응이다.
16일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12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취재진에게 "(국내 추가투자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고 반도체뿐만 아니라 (가전, 스마트폰, 전장 등) 회사 전체적으로 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투자 규모와 지역 등에 대해서는 "아직(미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관련해 사회 인프라 등 여러 문제들 때문에 인재 영입이 쉽지 않고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큰 숙제"라며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중장기 과제로서 정부가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6일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백운규 산업부 장관과 12대 기업 CEO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황세준 기자
삼성전자는 지난해 권오현 회장이 "2021년까지 21조4000억원의 반도체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만나 "국내에 더 많은 투자를 바란다"고 요청하면서 고민이 깊어진 상황이다. 윤 부회장은 "투자 관련 발표 시기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이날 백 장관은 삼성전자, 기아자동차, 두산, 롯데, 이마트, 포스코,, 한화, 현대중공업, CJ대한통운, GS,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12개 대기업 CEO들과 만났다.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추가 투자 여부를 확답한 기업은 없었다. CEO들은 오히려 당면한 현안 해결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손옥동 LG화학 사장은 "오늘 자리에서는 석유화학과 관련한 (정책적) 인프라가 개선됐으면 좋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원론적인) 이야기만 나눴고 어떤 구체적인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고 전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은 조선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냐는 질문에 "장관 말씀 경청 잘 했고 그대로 실행됐으면 좋겠다"면서 "장관도 힘들고 회사도 힘들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해양 야드 가동 중단을 결정하면서 추가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 측의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권 부회장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인력 효율화"라며 "노조도 결국 우리 직원들이므로 (만나서) 얘기를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노조(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지난 13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동안 파업을 실시했다. 지난 2014년부터 5년 연속 파업이다. 노조는 오는 19일 오후 2시부터 24일 오후 5시까지 6일간 전면 파업도 예고한 상태다. 노사 양 측은 올해 2월 지난 2년치(2016·2017년) 임단협을 힘겹게 마무리한 지 4개월 만에 또 다시 갈등에 직면했다.
박한우 기아차 사장은 "오늘은 미국 트럼프정부의 무역확장법 제232조(자동차 추가 관세) 발동과 관련해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고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며 "트럼프 관세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프다. 기아차 멕시코 공장 생산량 (조정) 등 여러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CEO 간담회에는 정진행 현대차 사장이 참석하지만 오늘 행사엔 무역확장법 대응 관련 일정으로 박 사장이 참석했다. 정 사장은 오는 19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서 열리는 공청회 참석 전 대외 접촉(아웃리치) 활동을 위한 민관 사절단에 포함됐다. 박 사장 역시 평화당 광주지역 의원들과 관세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간담회 중간 먼저 빠져나와 국회로 향했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의 관세 폭탄이 현실화 될 경우 가격 경쟁력 상실로 현지 수출길이 사실상 막힌다. 현지 공장 생산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회사 측뿐만 아니라 노조 측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 노조는 "미국 수출이 봉쇄되면 단체협약 42조 8항에 의해 미국 앨러배마주에 있는 현지 공장이 먼저 문을 닫아 2만여명의 미국 근로자들이 우선 해고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황세준 기자 hsj121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