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십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반도체 승자독식 구조를 굳히고 있다. 후발주자 대비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 가까이 앞선 기술을 선보이며 초격자 전략의 간극을 벌려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국 등 경쟁국가들의 추격을 따돌려 반도체 1등을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한국 경제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다. 이에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다음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회사 방문에 맞춰 마련할 투자 계획에 반도체 부문 확대 내용도 포함해 발표할 것으로 관측됐다. 2015년 25조5181억원, 2016년 25조4944억원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문을 중심으로 20조원대 시설투자를 진행했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43조4000억원을 투자했다. 올해는 투자액이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으나 계획을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7월 가동을 시작한 1라인은 2021년까지 30조원 가량이 투입된다. 지난 2월 결정된 평택 2라인 건설에도 1라인 수준의 비용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온양 후공정(패키지) 공장에 대한 추가 투자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7일 2020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이천공장 M16라인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골조, 공장 외관, 클린룸 공사 등 초기 투자액 3조5000억원이 투입된다. 차세대 노광 장비인 극자외선(EUV) 전용 공간 조성 등을 위해 기존 공장들보다 초기 투자 금액이 다소 늘어났다. 완공 후 장비 입고까지 포함하면 총 15조원 가량이 들어갈 전망이다. 회사측은 생산 품목과 규모는 향후 시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지만 반도체 업체들이 EUV를 10나노대 이하 공정을 위해 도입하거나 활용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점에 미뤄 10나노 미만 제품을 양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양사는 경쟁사보다 앞선 기술을 연이어 공개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 공정을 1x나노(10나노 후반)에서 1y나노(10나노 중반)으로 세대교체에 나서고 있다. 올 초 차세대 그래픽 메모리 1y나노 GDDR6 양산을 기점으로 지난 2월에는 PC와 서버에 사용되는 16Gb DDR5 D램 양산을 시작했다. 이달부터는 평택공장에서 모바일 D램 LPDDR4X 양산도 돌입했다. 경쟁사들은 아직 1x나노 공정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y나노 공정을 적용한 D램 비중을 연내 70%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낸드플래시도 세계 최초로 5세대(96단) V낸드플래시 양산에 돌입했다. 지난 2013년 8월 데이터 저장 최소 단위인 셀(cell)을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24단(1세대)을 쌓아올리는 기술로 V낸드플래시 시대를 열었던 삼성전자가 5년 만에 96단까지 셀을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2013년 1세대를 시작으로 2014년 2세대(32단), 2015년 3세대(48단), 2016년 4세대(64단)로 기술 발전을 거듭해왔다.
SK하이닉스는 1y나노 D램 기술 개발을 4분기 중 완료하고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2분기 20% 수준이었던 1x나노 D램은 연말까지 비중을 3분의 1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낸드플래시는 지난해 4월 72단 3D 낸드를 개발해 양산 중이다. 연말까지 72단 낸드플래시 비중을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의 절반 수준까지 끌어올린 다는 목표다. D램과 낸드플래시 공정이 삼성전자 대비 뒤처져 있지만 후발주자들과 비교해보면 D램은 5년 이상, 낸드플래시도 3년가량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도 투자 확대를 통한 산업 발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SK하이닉스 이천공장과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해 향후 투자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백 장관은 "반도체는 상반기 기준 국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라면서 "민관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경쟁국 추격을 따돌리고 글로벌 1위를 유지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소자·소재 개발 ▲시스템 반도체 육성 ▲팹리스·파운드리 산업 지원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앞으로 10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하는 '차세대 지능형반도체 기술개발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슈퍼사이클 종말에 대한 전망, 자급률을 높이려는 '중국제조 2025 계획' 등으로 반도체 코리아에 대한 위기상황이 퍼져있지만 아직은 기우에 불과하다"면서 "공격적 투자를 통해 기술격차를 지속적으로 벌려나가 퍼스트 무버의 지위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