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박원순', 강북 발전 모델 밑그림

빈집 매입해 청년 활동 공간으로 리모델링…학교 지원으로 생활체육 활성화

입력 : 2018-08-05 오후 7:14:55
[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삼양동 옥탑방 생활'의 반환점을 돈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민과 섞이면서, 강북 지역 발전의 밑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7월22일 강남북 격차를 줄이고, 주민 목소리를 듣겠다며 서울 강북구 삼양동 언덕에 있는 옥탑방에서 1달간 입주를 시작했다. 최근 그 여정의 반환점을 돌았다. 지난 4일 박 시장의 하루를 실제로 뒤쫓아 가봤다. 워낙 빡빡한 일정과 주민들이 보내는 반응을 보니, 박 시장의 옥탑방 살이는 이른바 '쇼' 논란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동질감 느낀 주민들…박원순 "동호회 중심 생활체육 정책 펼 것"
 
4일 오전 아침 6시15분, 면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숙소를 나선 박 시장은 삼양동에 인접한 미아동과 수유동으로 건너가 주민들을 만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굽이굽이 올라간 언덕 골목길을 지나 미아동 미양중학교로 향하다 보니 중간에 폐가 2채와 버려진 아파트 공원이 연이어 나왔다.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박 시장은 동행하던 강북구청 공무원에게 담을 다 허물어 큰 활용 공간을 만들 것을 검토해볼 것을 제안했다.
 
15분 걸어 미양중학교 체육관에 도착하자 마침 운동하던 한무리의 동네 배드민턴 클럽 회원들이 박 시장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한 노인 회원은 "사복입고 오니깐 우리 회원인 줄 알았어"라며 친근감을 표했다. 박 시장을 만난 클럽 회원들이 민원을 쏟아놓았다. 체육관 시설 이용 시간이 너무 짧아 불편하다고 했다.
 
박 시장은 "생활체육 정책을 동호회 중심으로 펴려고 한다"며 "주민이 못 쓰게 하면 학교에 주는 지원을 끊고, 시설 이용으로 인한 학교 측 손해를 서울시 부담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공공시설을 만들 때마다 체육 시설을 포함하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한 회원이 "강북구에 걸린 고도제한을 풀어서 강남과의 격차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민감하고 복잡한 청원을 들은 박 시장은 답을 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길어질 것 같자 일단 "운동하셔야 하니깐"이라고 수습한 뒤 "여기 계신 분들, 제가 지나간 다음 한 분도 이사가지 마시라, 손해본다"고 자신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도 박 시장은 동행하던 강북 공무원에게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전했다. 그는 "강남과 강북은 평균 수명 격차가 꽤 나는 걸로 안다"며 "생활체육 실태를 정확히 조사해서 5개년 계획 같은 개선책을 내달라"고도 말했다.
 
산을 내려온 다음에도 주민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한 주민이 다시 고도제한을 언급하자 박 시장은 "모든 곳을 다 풀면 강북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며 "다만 부분적으로 역세권 등은 풀 것"이라고 답변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오후 서울 강북구 오현동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오현숲마을, 재개발 대신 주거 개선"…친환경 마을버스 가이드라인도 검토
 
오후 4시30분쯤 박 시장은 강북구 번동의 오현숲마을을 돌아봤다. 강북구에서도 열악한 동네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0만호 주택 건설 정책을 시행할 때 언덕 위에 급조한 다세대주택 마을이다. 바다모래로 지어서 백화현상이 일어나고, 옹벽은 물이 새고 부풀어올랐다. 1종 일반용도지역으로 용적률이 150% 이하인데다 고도제한까지 걸려있어 재건축과 재개발의 사업성마저 떨어진 상태다. 예를 들어 6가구가 들어가는 다세대주택을 재건축해도 6가구 미만의 주택이 된다.
 
북서울꿈의숲 전망대에서 주민 대표들의 마을에 대한 설명을 들은 박 시장은 오후 5시45분쯤 오현숲마을의 동양어린이집으로 가 주민들을 직접 만났다. 주민들은 기다렸다는 듯 불편사항을 꺼내 놓았다. 주민이 모일 장소가 없어 어린이집 등에 모이는 현실, 인구 6700명 중 청년이 800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인구가 유출되는 구조, 길이 좁아 매연을 뒤집어쓰고 장사해야 하는 상황, 부족한 주차 공간 등을 호소했다.
 
주민들은 주거 개선을 위해 재개발을 요구했다. 그러나 박 시장은 "이 마을에 맞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경관과 공동체성을 해치지 않고 지구단위계획을 바꿔 건물 높이를 올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주차장 문제에 대해서는 마을 입구 등에 주차빌딩을 만들어서 공유주차장으로 이용하게 한다는 구상을 제안했다. 
 
번2동 통장이 "매연이 너무 많아 천식과 감기에 걸린다"고 하소연하자 박 시장은 "이제까지 마을버스 매연은 서울시의 통제 대상이 아니었으나, 가이드라인 통해 전기버스나 CNG로 바꿀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답변했다.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 확충도 약속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이 700억원이었으나 내년부터는 1조1000억원으로 늘린다"며 "동네 주민들이 세금을 낸 만큼 동네에서 많이 쓰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오후 북서울꿈의 숲 전망대에 올라 오현숲마을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옥탑방 와서 도시가스 문제도 해결"…더위로 인한 수면 부족 버텨
 
저녁 7시, 박 시장은 사전 만남이 약속돼있는 청년들을 맞이하러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약속시간 맞춰 청년들이 도착했다. 이 청년들은 서울시 부서와 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대학생들이다. 청년들이 옥탑방 생활을 묻자 박 시장은 "너무 좋다, 시청에만 있으면 공무원과 특별한 사람을 만나고 보통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며 "여러 사람이 하소연하고 생각하는 바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그 실례로, 옥탑방에서 직접 듣고 확인한 뒤 곧바로 해결한 민원도 소개했다. 삼양동 언덕 위에는 200가구쯤 이 사는데, 그곳에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아서 주민들이 석유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민원을 듣고 실태를 파악한 박 시장은 삼앙동 언덕 위 마을에 가스를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아침 폐가와 버려진 아파트 공원을 본 박 시장은, 빈집들을 싸게 구입해서 청년 조직활동 공간이나 청년 유스호스텔 등으로 꾸며 공간이 필요한 청년들에게 공급하는 방안을 방문 청년들에게 소개했다. 또 삼양동 언덕을 비스듬히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노인 등 취약계층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박 시장의 '옥탑방 살이'를 잘 아는 서울시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록적인 폭염으로 박 시장 역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열대야로 잠도 제대로 못자는 데다가 박 시장이 살고 있는 곳에는 제대로 된 주방시설이 없어 아침 식사는 쑥개떡이나 토스트·삶은계란 등으로 때우고, 약속이 없는 저녁에는 가끔 동네 치킨집에 주문해 식사를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오후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 있는 임시 숙소인 옥탑에서 대학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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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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