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윤 칼럼니스트
자아비판을 겸한 글이다. 며칠 전 후배기자 몇과 저녁을 했다. ‘에이스’ 소리 듣는 선수들이었다. 놀랍게도 10여년 전 일선기자들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출입처 할거의식, “신나게 조졌다”는 무용담, “아무개가 실은 어떻다”라는 뒷담화, ‘우리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과잉자부심, 어디 가든 줄서기 싫어하고 대접받아야 짜증을 안내는, 한 마디로 ‘알아서 모셔달라’는 특권의식까지. “다 선배들에게 배운 것”이라면 할 말 없다. 10여년 간 세상은 격변했건만 이 동네는 어찌 그리 요지부동인지 한편 부끄럽고 한편 어이가 없었다.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뒤처진 조직이 어딜까 꼽아봤다. 군, 언론사, 공기관 정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검찰이나 법원, 경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교롭게도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받고 있는 집단이자, ‘갑’이다. 나라 발전에 이들 집단 중 일부가 기여한 공로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과거 타성에 젖어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 마냥 세상을 바라보며 착각에 빠져있는 일부 윤똑똑이들의 오만과 편견은 적폐청산 차원에서 따져봐야 한다. 이들은 직역이나 신분이 매우 다른데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1. 할거의식.
이른바 ‘나와바리’(영역)에 안주해서 골목대장 노릇하며 세상 돌아가는 것 모르거나 외면하고 핏대를 세운다. 기무사계엄문건만 봐도 한 눈에 드러난다. 38년 전 그들의 보스였던 전두환 일당이 했던 것을 그대로 베껴 계엄문건을 만들었다. 거대한 촛불파도를 통해 드러난 시대정신을 단 일획도 읽지 못한 채 내란을 음모했다. 국회의원을 체포해 계엄해제의결을 못하도록 하고 외교관대응방안까지 들어있는데, “실행계획문건이 아니라 단순 법리검토”라고 아직도 어거지를 편다. 시민을 ‘졸’로 보고, 개돼지처럼 부리겠다는 반동이자 망발이다. 급기야 휴가중이었던 대통령이 기무사령관을 긴급교체했다. 긴급 지시만 두 번째다.
계엄문건을 보고받은 송영무 국방장관도 오십보백보다. ‘정무적 판단’이라는 두루뭉실한 핑계를 대며 넉달이나 깔고뭉개다 군 독소집단의 발본색원에 1차 실기하고, 전 국민 앞에서 일개 대령과 진실게임이나 벌이는 황당무계한 꼴을 자초했다. 정무적 판단이 국방장관의 제1소임인가? 최종적 정무판단은 두 말 할 것 없이 대통령 몫이다. 대통령께 팩트를 즉각 보고하는 게 장관 소임이란 걸 망각했거나 모르고 있었기에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군의 생명은 보고”라는, 훈련병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을 막상 해군대장 출신 국방장관이 지키지 않았다. 근원을 따지자면 그 역시 촛불이라는 거대한 시대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듯하다. 고 노회찬 의원은 ‘BC’에 대해 역시 그다운 명언을 남겼다. “BC는 Before Christ이자, Before Candle이다. 이제 촛불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게 촛불의 시대정신”이라고.
2. 여전한 갑을의식.
아직도 갑을병정 의식과 서열문화에 사로잡혀 갑에게는 굽신, 을 이하에게는 군림하며 권세를 휘두르고, “나부터, 아니 나만 살고보자”는 반사회적-반공익적 의식과 태도가 몸에 뱄다. 그래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3. 무능하고 게으르다.
자료 갖다바치는 건 물론이고, 문제점과 대안까지 설명해줘야 겨우 일하는 시늉 하다가, 위에서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가 토씨까지 받아적는 무영혼 속기사들이 태반이다. 일은 조금 하고 생색은 크게 낸다는 점까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들…. “세상 돌아가는 건 우리가 가장 빨리 안다”는 윤똑똑이들이 저 조직들에 득시글댄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프런티어나 혁신가들의 뒤를 헐레벌떡 쫓아다니다 한 마디 듣고는 마치 천하에 새 것인 양 한 줄 쓰며 뻐기는 게 언론과 공기관 종사자들임은 언론소비자이자 정책수요자인 시민들이 이미 훤히 알고 있다.
4. 책임에는 모르쇠.
책임질 일 있으면 남 탓부터 한다. “보고받고 관례대로 했을 뿐”이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군인은 부하 탓, 기자는 후배나 취재원 탓, 공공기관장은 실무자 탓, 경찰은 제보자 탓하기 바쁘다. 선례가 없으면 일을 못하고, 민간에 용역 내지 않으면 보고서 한 장 제대로 못쓰면서 세금으로 억대 연봉 따박따박 받아간다(언론사 제외).
더 일러 뭐하겠는가. 개혁과 적폐청산이 중단없이, 그리고 한층 가열차게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강윤 칼럼니스트(pen3379@gmail.com)